날짜 : 2013.07.28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네 신을 벗으라
성경본문 : 출애굽기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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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을 벗으라”
올해 초에 조선일보에서 본 기사가 있는데 종종 생각이 납니다. 모델회사의 사장이었던 이재연씨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사실 이 분은 강원도의 최고의 주먹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먹 생활을 그만 두고 다방 지배인이 됩니다.
다방 지배인 시절 어느 학생의 요구에 사진을 찍습니다. 그 사진이 잡지에 나오면서 유명해져서 모델이 됩니다. 스스로 모델로서 유명해지지만 아울러 모델라인이라는 모델 회사까지 창립합니다. 모델라인 출신 대표적인 배우가 권상우라고 합니다. 이 분이 앙드레김의 패숀쇼를 처음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곧 패숀계의 대부라고 소개되어집니다. 하여튼 이 분이 조선일보 기자와 대담을 하는데 두 가지 대담이 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모델들이 제일 많이 교육을 받는 것은 걷기가 아니겠습니까? 이재연씨는 모델이 된 후 돈은 없어 달리 배우지 못하고 다방 지배인이었기 때문에 다방 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심히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가 내일 결론은 모든 사람의 걸음은 다르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그 후로 저는 종종 ‘내 걸음은 어떤가?’ 생각을 해 봅니다.
한편 두 번째 기억에 남는 대담은 한국 모델들의 수준에 대한 질문에 한국 모델들이 세계적으로 많이 진출하고 있다고 하면서 뼈가 있는 말을 합니다.
“사실 모델에게는 ‘3씨’가 중요해요. 말씨, 맵시, 마음씨인데 그걸 다 갖추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결국 훌륭한 모델이 되려면 물론 외모가 중요하겠죠. 그거야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것이고…, 후천적으로 길러져야 하는 것이 있는데, 걸음걸이 아울러 말씨 맵씨 마음씨라고 합니다.
이 분은 본인은 늦게 모델이 되었지만 모델로서 성공하려면 고등학생 때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외모가 받쳐준다면 고등학교 때부터 걸음걸이를 연습해야 하고 말씨 맵씨 마음씨를 잘 가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챤들도 모델이 아닐까요? 우리는 주님의 모델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이 아닙니까?
크리스챤이 되는 순간 우리는 크리스챤 모델학교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학교에서 걸음걸이를 비롯 말씨, 맵씨, 마음씨를 다져가는 학생들일줄 압니다.
그러면 이 모델학교에선 어떤 교육이 진행이 될까요? 우리들의 최고의 모델이었던 모세의 모습을 통해 모델 학교 훈련생이 되어 보겠습니다. 모세의 후배가 되어서 모세를 한번 만나 볼까요?
모세는 지금 막 120세가 되었습니다. 후배들은 그가 앉아 있는 벤치 주변에 둘러 서 있습니다. 그리고 대선배인 할아버지 모세에게 묻습니다.
“할아버지 인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무엇이 할아버지를 그토록 위대한 모세 할아버지가 되게 하셨나요?”
모세는 당연히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이야기를 회상하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내가 장인 어른의 양을 치고 있었지 나는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었거든…. 그런데 그 때 내 나이는 80. 80세 난 노인네가 장인 어른의 양을 치고 있다면 그 인생 알아 본 거 아니겠어. 하여튼 그래도 힘은 좋았지, 장인 어른의 양떼를 몰다가 가다가 호렙산까지 가게 되었어.
그런데 광야에 흔하고 흔한 떨기나무들이 그 산에는 많이 있었지. 헌데 어느 나무에 불이 붙었더라고, 나는 또 산불이구나 생각하면서 가까이 갔지. 지금도 그렇지만 광야는 워낙 건조해서 가끔 나무들이 혼자 불에 타곤 하거든. 그런데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지, 불은 붙었는데 떨기나무는 타지 않는거야. 가까이 가니 갑자기 음성이 들려왔어.
‘모세야, 모세야.’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지.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을 벗었더니 계속 또 말씀하셨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나는 겁이 나서 얼굴을 손으로 가렸지. 그랬더니 엄청난 말씀을 하시는거야.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후배들이 조릅니다.
“할아버지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어요.”
“나는 못 간다고 그랬지. 나는 계속 ‘no, no, no, no’했어. 사실 그 때 나는 나의 이름이 바뀌어질뻔 했지 모세가 아니라 노세로.”
“그래서요?”
“하나님을 이길 자가 어디 있겠어?”
“그래서요? 어떻게 지셨어요?”
“너무 싱거운 질문을 하시는거야.”
“무슨 질문인데요?”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시더군. 아니 보면 모르니 그런데 그것을 물으시는거야. 내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지. 더 이상 노세가 되기 싫어서 대답했지. ‘지팡이니이다.’ 그랬더니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시더군. 곧바로 지팡이는 뱀이 되었어. 그후 꼬리를 잡으라고 하시더군. 그랬더니 다시 뱀이 되었어.”
“와우, 지금 가지고 계신 지팡이가 바로 그 지팡이예요?”
“그래 바로 이 지팡이가 뱀이 되었던 바로 그 지팡이야. 그런데 이런 것으로 놀래니? 이 지팡이로 물을 피가 되게도 했고, 홍해를 가르기도 했고, 홍해를 다시 풀어 바다가 되게 했어.”
“그 다음은 요?”
“오늘은 이만하자.”
“아니 좀 더 해 주세요.”
“더 이상 할수가 없어. 너희는 지금 이 지팡이가 기적을 행한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구나. 가장 중요한 것을 너희는 깨닫지 못하고 있어.”
교우 여러분,
모세 할아버지는 지금 무슨 교훈을 주시기 원하실까요? 모세는 당신이 졸업한 모델학교의 세 가지 교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광야에 흔해 빠진 떨기나무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세 가지 교재는 떨기나무, 신발,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아주 흔한 것입니다. 아주 평범한 것들입니다. 이 세 가지로 놀라운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가지가 흔하고 평범한 것들이지만 이 세 가지를 하나씩 생각하려면 세 번의 설교가 필요합니다. 이 시간 간단히만 요약해 드릴까요?
‘떨기나무.’ 영어 성경에 보면 thorn bush (가시나무)로도 번역되어 있고 그냥 bush(잡목)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광야에서 제일 흔한 잡목입니다. 그런데 이 잡목이 그냥 남아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별로 쓸데가 없습니다. 별로 쓸 데가 없으니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아마 급할 때 땔감으로나 사용될까요?
모세는 잡목을 보면서 생각이 나곤 했을 것입니다.
‘내가 바로 저 잡목과 같은 존재이지.’ 모세는 잡목을 볼 때마다 자신을 보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 쓸데가 없어서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나이 80이 나서도 겨우 장인 어른의 양을 칩니다. 어린아이들도 할수 있는 일을 말입니다. 잡목을 보는 것은 자신을 보는 것이고 그럴수록 심한 아픔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모르셨을까요? 어느날입니다. 바로 그 잡목에 불이 붙어 있습니다. 잡목에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이 함께 함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입니다.
두번째 ‘신발’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는 신을 벗습니다. 그 광경 앞에서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여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냥 말씀에 순종하여 신을 벗습니다.
모세는 얼떨결에 신발을 벗긴했지만, 나중에 이 장면을 생각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또한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당시 문화로는 신발을 벗는 것은 노예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노예는 주인 앞에서 신발을 벗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땅에 설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노예만 설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당신의 노예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은 모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는 잡목과 같은 세상적으로는 아무 쓸데 없는 존재이지만 아직 하나 쓸모 있는 구석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노예가 되기에는 너무도 합당합니다.
세번째로 ‘지팡이’입니다.
자기 손에 매일 붙어 다니는 지팡이입니다. 아침마다 이 지팡이는 자신이 목자임을 알려 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값이 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지팡이가 없어지면 언제나 밖에 나가서 또 나무를 베어 만들면 됩니다.
사실 지팡이에 대해서는 두 주 전에 상록기도회 헌신예배시 자세히 들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말씀 안 드려도 좋을줄 압니다.
늘 손에 붙어 다니던 지팡이가 뱀으로도 변하고 때로는 나일강물을 피로 바꾸기도 하고 홍해물을 가르기도 했습니다.
하찮은 지팡이가 하나님의 노예의 손에 들려졌을 때 뱀이 되기도 하고 강물을 붉게 만들기도 한 것입니다.
120세가 된 모세는 지금 벤치에 앉아서 자기를 자기가 되게 한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후배들에게 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너희도 너희의 잡목, 신발, 그리고 지팡이를 사랑하라.”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에게는 이 세 가지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편의상 신발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도 신발은 여러 켤레가 있습니다. 정장을 할 때 신는 검정 구두, 갈색 구두, 편하게 신는 검은 신, 갈색 신, 그리고 운동화, 요즘은 골프를 안 칩니다만 때로 잔듸밭 일을 할 때 종종 골프화를 신습니다.
노예 치고는 신발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마 더 많아도 상관하시지 않으시라고 봅니다. 만일 신발을 신으면서 나의 참 모습을 되새긴다면…,
“나는 하나님의 노예이지.”
모세의 신발은 아마도 샌들이었겠지요. 그러나 그 당시는 지금이나 신발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줄 압니다. 모세의 신발과 저의 신발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난다면 마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발을 신고 벗을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일줄 압니다. 아마 모세는 늘 신발을 신을 때마다 생각하였겠죠.
“나는 하나님의 노예지.”
이제 잡목과 지팡이는 무엇인지 살펴 볼까요? 먼저 잡목입니다.
모세의 잡목은 저에게는 뜰의 ‘잡초’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가끔 말씀드렸습니다만 장모님께서 소천하신 후 저희 집 잔듸밭 잡초는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잡초로 인해서 많은 유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잡초가 바로 저에게는 떨기나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도 잡초처럼 살다가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엄습하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장 가까이 하셨을 때는 제가 잡초처럼 되었을 때였습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였을 때 하나님은 기적의 능력으로 저에게 찾아 오곤 하셨습니다. 잡초가 저보다 더 행복해 보였을 때도 있었습니다.
요즘도 끝없이 잡초가 저를 괴롭힙니다. 뽑으면 또 나오고 또 나옵니다. 잡초를 뽑기 시작한지 2년째밖에 안 되는데 벌써 잡초박사가 되는 기분입니다. 때로는 어떻게 하면 내년도는 힘 덜 드리고 잡초를 제거하나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내년도에도 어김없이 잡초는 또 나올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저의 과거를 생각하게 하려고….
마지막으로 저에게 지팡이는 무엇일까요? 이것도 쉽게 생각해 낼수 있었습니다. 당연하죠. 어렵게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은 이미 지팡이의 자격을 잃은 것이죠. 지팡이는 늘 손에 붙어 다니는 것이니 그것을 생각하는 것 어려워서는 안 됩니다.
제가 잡초를 뽑을 때 무기가 있습니다. 손으로만 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이라서 무기를 사용합니다. 쓰다가 버린 젖가락입니다. 늘 잔디밭에 나가면 작은 의자에 주저 앉아서 손으로 뽑습니다. 무기가 필요할 때는 옆에 늘 놓여 있는 젖가락을 사용합니다. 아주 간편하고 손으로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누가 와서 손에 든 게 뭐야 묻는다면 저는 겸연쩍게 대답할 것입니다.
“젖가락.”
우습게 보이지만 아주 요긴합니다. 그러나 그 젖가락은 우리집에 가보순으로 따지면 아마 꼴찌가 아니면, 꼴찌에서 두째나 될까요?
모세에게도 지팡이는 너무 요긴했지만 절대로 가보는 되지 못합니다. 언제나 밖에 나가 죽어 가는 나무를 짤라서 만들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었습니다.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홍해를 막았습니다.
물론 그 젖가락은 아직도 뱀이 되거나 홍해를 가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그 젖가락을 모세의 지팡이와 견줄수 있을까요? 저는 견줄수 있다고 믿습니다.
단지 그 젖가락으로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의 위해서 사용한다면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의 가정에도 가보가 있을줄 압니다. 그런데 그 가보로 뱀이 되게 하실수 있습니까? 홍해를 가를수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 그 가보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실 때 말입니다.
120 살 된 모델의 대부 모세의 삶을 생각하면 바로 이 세가지입니다. 잡목, 신발, 지팡이.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그는 최고의 길을 갔습니다. 최고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 가지로 훌륭한 그리스도의 모델이 되어 가십시다.
우리에게도 이 세가지는 다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잡초를 볼 때마다 잡초와 같은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잡초는 우리의 과거를 아름답게 보게 합니다. 신발을 신을 때마다 하나님의 노예가 되는 결단을 하십니다. 신발은 현재 나의 참 모습을 보게합니다. 지팡이를 손에 들고 우리를 통하여 새로운 능력을 발휘하실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지팡이는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맞이하게 합니다.
과거를 감사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 한걸음씩 대디딜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델이 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은 희미하나마 그리스도의 걸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 우리의 책임이 달려 있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신발입니다. 잡초나 지팡이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신발은 우리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신발을 벗고 신을 때 하나님의 노예임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발은 걷기 위한 것입니다.
모델이 걷는 훈련이 필요하듯 우리도 걷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교우 여러분,
잡초를 보면서 노예의 마음으로 걸으십시다. 지팡이를 손에 들고 노예의 마음으로 걸으십시다. 주님의 모델이 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브 파칼레라는 프랑스 과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은 걷는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삼고 늘 걷기를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걷는 행복’이라는 책도 지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나는 걷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으면서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 분의 걷는 모습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더 궁금한 것은 모세의 걸음입니다. 하나님의 노예로 걷는 모세의 걸음이 궁금합니다. 그의 걸음을 보지는 못했지만 비슷하게 흉내는 낼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한번은 떨기나무 한번은 지팡이를 생각하면서 걷는다면 바로 우리는 모세의 걸음의 소유자가 아닐까요? 그리고 하루 한번 신을 벗을줄 안다면 말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