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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사람들

날짜 : 2013.03.31
예배명 : 부활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부활의 사람들
성경본문 : 요한복음 21:1-14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0331.wmv

오츠 슈이치라는 일본인 의사가 있습니다. 호스피스에서 일하시는 의사입니다. 약 1000명의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본 후 두 가지 책을 편찬했습니다. 하나는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이고, 두 번째 책은 ‘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두 사람’이라는 책입니다. 첫 번째 책은 후회 모음집이라면 두 번째 책은 감동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이치 의사는 1000명의 환자를 대한 후 당신이 만난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후회를 남기고 떠난 사람들과 감동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로 나눕니다. 후회 모음집에 나오는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릴까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25명의 후회를 남기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편 감동 모음집에는 12명의 감동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시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면,
“행복의 언어를 남기고 떠난 사람.”
“최선의 순간을 남기고 떠난 사람.”
“따뜻한 유머를 남기고 떠난 사람.” 등 여러 명의 감동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2명의 감동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지 않고 11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 두 사람’인데 실상 11명의 이야기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자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열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당신의 이야기.”

오늘 부활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들의 삶을 후회의 삶에서 감동의 삶으로 바꾸게 하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된 장면은 세 번째 나타나신 장면입니다. 세 번째로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전의 말씀을 보면 첫 번째 두 번째는 두려움 가운데 집에 모여 있을 때 나타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나타나셨을 때 도마가 마침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도마가 의심을 하니 8일 후에 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미 제자들은 두 번 부활의 주님을 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못해도 10일은 지났을 때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장면이 시작되는 배경입니다.

2절에 보면 7명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산해 보았더니 7명입니다. 7명이 앉아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많은 이야기를 했겠죠. 특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주님이 어떻게 나타나실 것인가 궁금해 하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나누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상의 날개를 피고 있지만 배가 고파 옵니다. 부활의 주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먹을 것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에든 앞장서는 베드로가 이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니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역시 시몬 베드로가 앞장을 서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옛 직업으로 돌아 간 것입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후회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가 가만히 집에 앉아서 부활의 주님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먹고 살 일이 급해서 다시 배를 타고 나오자고 한 자신의 모습이 마냥 부끄러워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 행여나 하고 끝까지 고기를 잡습니다. 후회의 마음을 안고…. 4절 말씀입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를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고 베드로는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후회의 현장에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 번째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자들은 예수신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고기가 있느냐?”

보통 때 같으면 “무슨 상관이요” 할 텐데 많은 후회 가운데 얼떨결에 대답합니다.

“없나이다.”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얼떨결에 그렇게 했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요한이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라고 말해 줍니다. 베드로는 넘치는 후회 때문에 주님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바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오기 전에 그렇게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말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옛날 버릇 어디 갑니까? 바다로 뛰어 내립니다. 그동안 괜히 후회한 것을 후회하면서 말입니다. 육지에 올라와 보니 놀라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베드로는 잠시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 듭니다. 숯불, 그리고 생선과 떡. 배고픔도 다 잊고 베드로에게는 몇 가지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숯불을 보자마자 떠 오른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붙잡혀 있을 때 불을 쬐면서 마당에 있다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 후로 불은 베드로를 도리어 얼어붙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짓궂게 숯불을 피어 놓았습니다. 주님이 피운 숯불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주님은 놀리는 듯합니다.

“네가 나를 부인했지.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런데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생선과 떡. 이 생선과 떡은 어디서 났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생선과 떡을 보면서 무엇이 연상되었을까요? 5병2어의 사건을 연상케 하였을 것입니다.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한 장정만 5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은 바로 그 현장이 생각이 납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늘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또 자랑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그 장면 때문에 이제 까지 주님을 믿고 따라 왔던 것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을 부인한 것과 주님의 위대함을 나타낸 5병2어의 사건은 전혀 같이 갈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땅에 앉아서 짓궂은 장난을 하고 계십니다. 두 이야기를 하나의 멋진 이야기로 꾸밀 수가 있음을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서 숯불의 아픔 곧 배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5병2어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함께 춤을 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나는 네가 나를 부인 한 것을 가지고 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한단다. 그러니 나를 부인한 것을 염려하지마.”

베드로는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셨던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 오라.”

사실 방금 잡은 생선도 오병이어만큼 놀라운 기적의 산물이었습니다. 밤새도록 못 잡았다가 그물이 찢어질듯 잡은 자체가 오병이어의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해서 친히 숯불 위에 펼쳐진 생선은 오병이어의 이야기임을 확증시키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토록 좋아 했던 오병이어의 사건과 자신의 수치의 사건은 동전의 양면임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에 베드로를 초대합니다.

“조반을 먹으라.” 숯불을 가지고 요리하신 생선과 떡을 나누어 주십니다.

이렇게 부활의 주님은 베드로의 잘못을 연료로 삼아서 5병2어의 기적의 이야기를 완성 시키시고 계신 것입니다. 많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부활의 주님의 놀라운 지혜를 맛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상태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두 가지로 차여 있습니다. 하나는 수치 또 하나는 fantasy. 우리들 마음에 수치심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또 하나는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fantasy가 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두 가지는 전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지만 이 두 가지가 우리들 인생에 차지하고 있는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수치심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한편 fantasy는 그야말로 fantasy입니다. 이루어지지 못할 꿈입니다.

33년간 인간으로 사셨던 주님은 이 인간의 모습을 너무도 잘 이해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이 두 가지 가운데 살고 있는 대표적인 인간임을 보아 오셨을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환상 속에 살고 있는 베드로를 너무도 잘 보아 오셨습니다. 아울러 늘 성급한 베드로 특히 당신을 세 번씩이나 배신한 후 수치심에 가득한 그 모습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기 전에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수치를 상징하는 숯불을 피워 놓으셨습니다. 아울러 오병이어의 기적을 상징하기 위해 생선과 떡을 숯불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베드로의 모든 것을 친히 이해하시고 그의 꿈을 완성시키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후로 최고의 사도가 되어 갑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주님을 통해 자신의 모든 부끄러운 이야기도 최고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료가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베드로는 후회의 사람이 아니라 감동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베드로의 후회로 가득한 이야기를 이처럼 아름답게 요리하신 부활의 주님은 지금은 어디에서 그 놀라운 요리 솜씨를 발휘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답은 수치심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fantasy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오병이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예루살렘 성지에서 한 달간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벌써 25년 전입니다. 그래도 아직도 그곳에서의 몇 몇 장면은 뚜렷이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승천하시는 주님의 마지막 발자국입니다. 돌 위에 왼발 오른발 두 발자국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돌을 마지막으로 밟으시고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안내인이나 관광객이나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어떤 장사꾼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지막 밟은 돌이 아닐지라도 주님의 승천을 생각하게 하는 돌입니다. 그 돌이 아직도 저에게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번 설교 준비를 하면서 혼자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장사꾼들이 이것은 안 만들어 놓았나? 주님께서 분명히 앉아서 조반을 드셨을 텐데 부활하신 주님이 앉으셨던 곳은 왜 안 만들어 놓았나?” 그러고 생각해 보았더니 발자국 보다는 만들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언젠가 디베랴 호숫가에 누군가가 예수님이 앉으신 자리를 만들어 놓는다면 당장 그것을 파괴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더 이상 땅에 앉아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수치심과 fantasy사이에 헤매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들 마음에 앉아 계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은 앉으시기만 하시면 엄청난 일을 벌이십니다. 놀라운 요리사가 되십니다. 어떤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도 최고의 기적의 사건을 만드십니다. 주님은 당신이 앉아 계신 사람을 통해 새로운 감동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교우 여러분, 헤아릴 수 없는 수치심이 괴롭히십니까?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fantasy가 늘 떠오르십니까? 부활의 주님은 이런 분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 안에 좌정하시기 원하십니다. 좌정하신 후 놀라운 이야기를 창조하십니다. 12번째 사람은 바로 교우님이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42살 난 여인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차비를 내고 차에 오르니 앞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여인은 앞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뒤로 가서 앉으세요.”
운전기사가 소리칩니다. 그래도 여인은 그냥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주위에 앉아 있는 백인들이 욕을 퍼 붓습니다. 그래도 여인은 그냥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끝내 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려 경찰에 연락합니다. 경찰이 와서 체포하고 감금합니다. 그로 인해 놀라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흑인 차별제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마틴 루터 킹이 여인의 운동에 가담합니다. 바로 이 여인이 Rosa Parks입니다.

이 여인이 백인 좌석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부활의 주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처럼 그 여인은 자신이 앉아야 할 곳에 앉았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흑인으로서 많은 수치를 지고 살았었습니다. 아울러 그는 엄청난 꿈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모신 그 여인은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기적의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수치를 멋지게 요리하는 부활의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과 함께 자기가 앉아야 할 역사적인 장소에 앉은 것입니다. 이에 부활의 주님은 멋진 이야기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앉아 계십니까?

교우 여러분, 부활의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니 아무데나 앉지 마십시다. 선별하여 앉으십시다. 우리들이 앉는 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펼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앉은 곳에서 새롭게 벌어질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을 생각하며 외치십시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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