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1.09.18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다시 찾은 안디옥
성경본문 : 사도행전 11장 19-26, 1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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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어느 교회 가족 수련회 인도 차 스토니 포인트(Stony Point) 수양관을 가게 되었었습니다. 그곳 책방을 들렸었는데 한 카툰북(cartoon book)이 눈에 띄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님에 대한 카툰이었습니다. 눈요기도 될겸 값도 싸서 하나를 들고 카운터(counter)에 갔습니다. 점원이 제가 손에 들고 있는 카툰북을 보더니 하는 말이, “이 cartoon book때문에 이번에 이집트 정권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얼마 전 이집트의 무바락(Mubarak)정권이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연이어서 리비야(Libya)의 카다피 정권도 무너졌구요. 요즘 씨리아 등 아랍권은 초긴장 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이집트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무바락정권을 무너지게 한 것이 바로 제 손에 들려 있던 마틴 루터 킹의 삶을 그린 작은 카툰북이었다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은 흑인들만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자유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틴 루터 킹을 마틴 루터 킹이 되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 무엇이 이러한 위대한 인물을 만들어 내었나요? 한 두 가지로 그를 만들어간 과정을 요약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도 몇 가지로 요약한다면 그는 훌륭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3대 목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학위는 보스톤 대학교 박사학위입니다. 훌륭한 가정, 훌륭한 교육, 마지막으로는 훌륭한 교회일줄 압니다.
할아버지가 세우시고 아버지가 목회를 하신 아틀란타(Atlanta)의 에벤에젤(Ebenezer)교회에서 자랍니다. 후에 아버지와 함께 목회도 합니다. 현재도 그의 기념관은 에벤에젤 교회 앞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교회가 바로 그를 그로 만들어 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제가 남달리 킹 목사님을 좋아하는 것은 그는 이민교회가 탄생시킨 위인이라서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를 탄생시킨 에벤에젤 교회는 바로 흑인들의 이민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또 다른 한 이민교회가 소개되어집니다. 이 이민교회에서는 마틴 루터 킹보다 더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한 사람이 탄생됩니다. 제가 자주 언급해 드렸습니다만, 아무리 자주해도 아직도 부족한 느낌입니다. 바로 사도바울이 탄생됩니다. 사도바울을 탄생시킨 안디옥교회가 이민교회임을 본문 11:19절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이스라엘에서 환난을 피해 도망 온 사람들 곧 피난민들이 안디옥에 모여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니 이민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피난민들이 세운 교회가 나중에는 세계에 첫 번째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13: 2, 3절 말씀입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가 평강 가운데 열심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큰 문제가 있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더 깊게 알기 위해서 인지 금식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나바와 사울을 세계선교사로 보내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마 놀랬을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우리 이민교회가 두 사람씩이나 세계선교사로 보냅니까? 아직 예루살렘교회도 한 사람도 보내지 못했는데….”
그러나 금식함을 통해서 받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들은 순종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하여 보냅니다.
그러면 이들이 안수하여 보내는 바나바와 사울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이들은 사실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들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가 날로 부흥한다는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교회에서 바나바를 안디옥교회 목사로 파송한 것입니다. 이 바나바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자기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25, 26절 말씀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아서 모시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목회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 직접 온 목사니 1세 목사입니다. 반면 사울은 다소 태생이니 히브리말을 잘 한다고 할지라도 2세 목사입니다. 1세와 2세 목사가 파트너가 되어서 멋지게 목회를 한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바나바와 사울이 멋지게 목회하는 것을 보고 안디옥교회만 섬기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우셨던 것 같습니다. 성령이 안디옥 교우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안수합니까? 목회자가 평신도를 안수합니까? 평신도가 목회자를 안수합니까? 바나바와 사울은 자기가 권면하고 가르친 교우들의 안수를 받고 세계선교사가 됩니다. 보통 누가 누구를 안수합니까? 목회자가 평신도를 안수합니다. 선배 목회자가 후배 목회자를 안수합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달랐습니다. 자기들을 권면하고 가르쳤던 두 목회자를 교우들이 안수하여 세계선교사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떤 안수였을까요? 바나바와 사울은 어떤 심정으로 평신도들에게 안수를 받았을까요? 그들을 안수를 준 사람은 어느 하나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바나바와 사울보다 나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사람들의 안수를 받은 것이 아니라 교회의 안수를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 교회의 안수를 받은 것입니다. 교우님들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어머니 교회였습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그토록 위대한 세계선교사들이 된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부족한 교우님들의 안수를 기꺼이 받았습니다. 교우님들이 바로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어머니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안수 받는 모습을 보면 얼마 전 설교말씀을 드렸던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물론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인인 세례요한에게 머리를 숙이시고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이들은 겸손히 교우들에게 안수를 받았을 것입니다.
벌써 11년이 지났습니다. 2000년도 저희 교회 표어를 ‘세계를 향한 교회’로 정했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가 세계를 향한 교회였는데 바로 안디옥 교회가 이민 교회였음을 생각하고 저희 교회도 안디옥 교회를 닮아 가자는 취지에서 그러한 표어를 정했었습니다.
그동안도 제직회나 쉐마의 밤을 통해서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11년 만에 처음으로 주일 설교 본문으로 삼고 안디옥 교회를 방문해 봅니다.
이번 설교 준비를 하면서 11년 전에 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음을 이번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사도바울과 바나바의 이 모습이었습니다. 자기가 가르친 자들에게 겸손히 안수를 받는 모습 말입니다. 이 모습은 주님을 닮은 모습입니다. 안수를 받으며 더욱 겸손해 졌을 것이고 그러기에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위대한 길을 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심정으로 안수를 받았을까요? 저는 혼자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결단이 확고했을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 교회 안디옥 교회로 인해 파송 받게 됨을 감사하리다. 나에게 기쁨을 주던 슬픔을 주던, 희망을 주던 아픔을 주던, 감사하리다.”
제가 오늘 어머니 교회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4, 5년 전까지 자주 사용하다가 너무 사용하는 것 같아서 최근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근거 없이 제가 만든 용어는 아닙니다.
초대 교부 중에 키프리안(Cyprian)이라는 교부가 있는데 이 분이 이런 유명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습니다.”
이 분이 왜 이런 표현을 했겠습니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는 좋아하지만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 보다 교회가 지저분합니다. 의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에 나와 실망도 많이 하고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하나님은 좋은데 교회는 정이 가지 않습니다. 차츰 하나님만 부르 짓고 교회를 등한히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모양입니다. 이들을 향하여 키프리안는 외친 것입니다.
“당신은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습니다.”
키프리안도 한 때 교회를 싫어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만 가까이 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도리어 놀라운 체험을 한 것 같습니다. 문제 많은 교회, 상처를 주는 교회 모순덩어리인 교회를 어머니로 여길 때 도리어 놀라운 체험을 본인은 경험한 것 같습니다. 모순 덩어리 교회를 어머니로 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저절로 아버지가 되어서 찾아오는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도리어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가까이 계셨던 것입니다.
아마 사도바울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줄 압니다. 물론 안디옥 교회 교우들이 훌륭한 교우가 많이 있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두 훌륭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교회도 온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어도 아직 죄인은 죄인입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말을 제일 많이 하지만 사실 서로를 제일 많이 비판하기 쉬운 곳이 교회입니다. 아픔도 주고 위로도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온갖 모순 덩어리가 바로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사도바울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순 덩어리 교회를 통해서 안수 받기를 기뻐합니다. 기뻐할 뿐 아니라 각오도 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머니 교회를 통하여 예상치 않은 비판과 어려움을 당해도 그것조차 감사함으로 받아드릴 결단을 하며 이들은 안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최고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선교를 떠나게 됩니다. 어머니 교회의 모순도 감사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사도바울이 교회를 어머니로 삼았다는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1:23절을 보면 교회를 어머니로 삼지 않고는 고백할 수 없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사도바울은 모순 덩어리인 어머니 교회로 인해 도리어 감사하는 자가 되었기에 그 모순덩어리 교회가 도리어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임을 역설적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제직 안수를 받는 제직 여러분, 저희 교회 안에 비천해 보이는 모습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무지해 보이고 불의해 보이고 미성숙해 보이는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그 모습 그대로를 감사해 보십시요. 이 모습을 나의 어머니 교회의 모습으로 받으시면서 하나님께 찬양 드리십시요. 그 때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실 것입니다. 어머니 교회가 우리에게 시키는 일, 보내는 곳에 말없이 순종한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먼저 가 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승리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는 늘 고쳐야 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늘 성숙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선 눈 앞에 보이는 어머니 교회의 모습 그대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사도바울은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였습니다. 병자를 낫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 보다도 성경 중 13권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마틴루터킹 목사님이나 사도바울이나 모두 비천하고 미성숙해 보이는 이민교회 출신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를 어머니 교회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로인해 교회는 훌륭한 교회가 되었고 훌륭한 인물을 만들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어느 교회도 온전하게 만드신 교회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 우리는 함께 나눈 것입니다. 미성숙한 교회를 사랑할 때 더 큰 은혜가 내리기 때문입니다. 미성숙한 교우님들의 안수를 기쁨으로 받을 때 세계적인 인물이 탄생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다. 부족한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자와 훌륭한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자와 누가 더 큰 축복을 누리겠습니까? 부족한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안수 받으시는 제직 여러분, 부족한 어머니 교회에 순종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처음 소개한 카툰북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동료 랄프(Ralph)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랄프, 먼저 감옥으로 가게 거기에서 먼저 들어가 있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일세.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당신이 계속 그리스도의 사랑에 따라 살면 이와 같은 경험을 늘 하게 될 것일세, 하나님이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늘 체험하게 될 것일세. 하나님은 당신을 붙들고 계시고 응원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체험할 것일세. 무엇보다도 당신이 기대한 것 보다 훨씬 큰 승리를 안겨다 주신 것일세.”
교우 여러분, 어머니 교회가 우리에게 시키는 일을 하고 보내는 곳에 말없이 가는 순종의 삶을 산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먼저 가 계시고 우리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승리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대를 훨씬 넘는 승리의 삶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