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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상

날짜 : 2011.09.11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의인의 상
성경본문 : 마태복음 10장 40-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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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이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 있습니다. 피그말리온은 조각가였는데 여성을 싫어해서 평생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상아로 여자를 조각했는데 그 아름다움이 너무 완벽해 그 작품과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그는 살아 있는 연인을 대하듯이 조각에 옷을 입히고 손가락에 보석 반지를 끼우고 목에는 진주 목걸이를 걸어 주었습니다. 그는 상아 여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쏟습니다.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들이여, 저 상아를 저의 아내로 삼게 해 주소서.”
그의 정성에 감복한 신은 그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피그말리온이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누인 조각을 보자 생기가 도는 것 같았습니다. 손을 가만히 만져 보니 따뜻한 체온이 느껴집니다. 입술에 키스하니 그 처녀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 신화로 인해서 심리학자들은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냅니다. 누군가가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믿어줄 때 여인은 아름다워진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믿어줄 때 위대한 인물이 탄생된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은 시대가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우리를 위대하게 보는 사람들로 인해서 시대를 초월해서 위대해 질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니카라과 단기선교단 파송예배로 드립니다. 그렇다면 선교단원들이 니카라과에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 피그말리온 효과가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주민들을 위대하게 생각하며 만나는 것입니다. 그 만큼 그들은 위대해 집니다. 선교단원 여러분, 여러분이 니카라과 주민을 보는 눈이 그토록 소중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웃을 특히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대하게 보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정말 이웃을 위대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들만 주님께서는 선교지로 보내실까요? 사실 오래전 미국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선교를 해서 오늘 저희 나라가 세계선교에 큰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초창기 선교사들의 편지를 읽어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선교사들 중에 우리 한국인들을 멸시하는 내용의 편지도 많이 발견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을 멸시하는 이들을 통해서도 참 선교가 가능했을까요? 가능했기 때문에 오늘의 선교한국이 되었겠죠?

그러면 이 시간 주님께서는 어떠한 자들을 선교지로 보내시는지, 선교지로 가는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가시길 원하시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상고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내 보내시면서 하시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시간상 읽어 드리지는 못하지만 본문 말씀 다음 절인 11:1절과 10:5절을 보면 제자들을 전도하도록 보내는 배경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여러가지 말씀으로 권면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든가 이런 저런 권면의 말씀을 하십니다. 아무리 권면을 해도 제자들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만 간 모양입니다. 마치 피그말리온 효과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을 위대하게 보라고 하는 훈련만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훈련이 더 필요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펀치라인을 터뜨리십니다. 40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자기들은 어떻게 십자가를 지나 걱정이 태산 같았던 차입니다. 이제 주님을 따르기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훈련 초년생들입니다. 말씀도 더 잘 알아야하고 의료기술이나 세상 기술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웃을 보는 눈도 좀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놀라운 변화가 있게 해야 하는 큰 부담을 갖고 있었던 차입니다. 그런데 깜짝 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자기들을 영접하는 자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바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위대하게 보는 눈이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들을 영접하는 자마다 위대한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고든 콘웰(Gordon Conwell) 신학교 총장 취임식이 그레이스 체플(Grace Chapel)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졸업한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고든 콘웰신학교 총장 취임식에 프린스톤 신학교 총장이 초대를 받았는데 프린스톤 신학교 총장이 시간이 안 되서 참석을 못하니 저보고 참석할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마침 그 날 시간이 되서 대신 참석할 수 있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연락을 해 놓고 났더니 좀 마음이 캥기기 시작합니다. 그곳에 참석하는 분들이 모두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들일텐데 저는 신학 석사학위 소유자입니다. 그 말은 모든 사람들은 붉은 색 내지 오렌지색으로 긴 박사후드를 몸에 걸치고 참석할텐데 저는 짧은 석사후드를 걸치고 참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짧은 석사후드도 졸업식 때 빌렸었기 때문에 그나마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핑계를 대야지 하면서 석사후드도 없는데 다른 사람 찾아보시면 어떠냐고 연락드렸습니다. 답장이 오기를 보스톤 지역에 프린스톤 졸업생 중에 갈 만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전갈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석사후드를 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저는 우편물을 열면서 속으로 은근히 바랬습니다. 사무직원이 착각해서 박사후드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열어 보았더니 역시 짧은 석사후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짧은 석사후드를 들고 취임식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프린스톤 총장을 대신해서 왔다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초청된 총장들이 모인 방으로 제가 인도를 받아 들어갔습니다. 일찍 온 총장들은 이미 까운에 후드를 다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긴 박사후드였습니다. 저는 짧은 석사후드를 착용한 채 프린스톤 신학교 총장 자리에 섰습니다.
그 누구도 저를 밀어내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프린스톤 총장 자리에 앉아서 취임식을 마쳤습니다. 저를 영접한 고든 콘웰신학교 담당자들은 저를 영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린스톤 신학교 총장을 영접한 것입니다. 비록 제가 짧은 석사후드를 착용하였어도 말입니다. 아니 제가 짧은 석사후드마저 없이 갔었더라도 그들은 저를 영접했어야 했고 저를 영접한 그들은 실제로는 프린스톤 신학교 총장을 영접한 것입니다. 반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만일 그 취임식 자리에 가지 않았더라면 고든 콘웰신학교교수들은 프린스톤 신학교 총장을 영접하는 특권을 잃을 뻔 한 것입니다.
이처럼 부족한 제자들이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특권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피그말리온 효과와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이 이웃을 어떻게 보느냐가 이웃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형편이 어떻든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을 영접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대리인이요 하나님의 대리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리인을 영접하는 방법이 다 다를 것입니다. 41절 말씀입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쉽게 풀이하면 선지자라고 믿고 선지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바로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곧 선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의인이라고 믿고 의인을 영접하는 사람은 의인의 상을 받습니다.
다시 총장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총장이라고 생각해서 영접하면 바로 총장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그런데 바로 이 이상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올 해도 공부하기 위하여 많은 젊은 학생들이 보스톤을 찾아오고 있는데 공부하는 학생들의 최고의 꿈은 총장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총장이 되는 것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총장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영접하면 총장상을 받습니다. 믿겨지지 않죠.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존재가 이처럼 귀중한 것입니다.

반면 제자들은 한편으로는 큰 감격 가운데 듣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염려가 생겼을지 모릅니다. 선교단원들도 좀 걱정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들은 선지자나 의인 같아 보이지 않을테니 그러면 아무도 자기들을 영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을 잘 아시는 주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42절 말씀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선지자와 의인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훈련받는 제자의 초라한 모습만 가지고 있어도 이웃에게 큰 상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을 제자라고 생각해서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도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교단원 여러분, 니카라과 주민들은 여러분이 주님의 제자로서 선교단원이 되어 니카라과를 찾아 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여러분을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물론 냉수를 들고 오지는 않죠. 그러나 여러분을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과 눈을 가지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이미 그것으로 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들이 받은 상은? 제자의 상을 받은 것입니다. 곧 주님의 제자가 그동안 수많은 죄를 지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제자를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면서 영접할 때 그들에게 제자의 상이 임합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우리가 이웃을 보는대로 이웃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피그말리온 효과를 거꾸로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이웃을 보는 그대로 이웃이 변하기 전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니카라과 주민들이 선교단원들을 보는 그대로 그들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가 이처럼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자라고 스스로 부르기조차 부끄러워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을 선지자로 여기는 사람은 선지자의 상을 의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의인의 상을 제자로 여기는 사람은 제자의 상을 받게 됩니다.
얼마 전 한국 TV를 보는데 코메디언들과 가수들이 나와서 둘씩 짝이 되어서 음악 경연대회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 대상을 발표하니 대상 받은 팀이 아주 신이 났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다른 대상이 발표 되고 또 다른 대상이 발표되고 결국 참석한 전원이 대상을 받게 되는 대회였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대상을 주기 위해 준비된 방송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든 사람들에게 대상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한 상을 주시려고 이번에 니카라과 선교단원들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대상이 주어집니다. 선교단원 여러분, 여러분의 1 주일간의 희생의 삶으로 인해서 니카라과에 대상의 잔치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상은 선교지에서만 주어지나요? 우리가 선교지에 가지 않을지라도 서로서로를 선지자요 의인이요 제자로 영접할 때 우리에게도 이 대상은 주어집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대상을 수여받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갔습니다. 남은 일은 우리가 서로서로 선지자와 의인과 제자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선교단원들은 니카라과에서 선교단을 보내는 교우님들은 보스톤에서 서로를 이처럼 영접하십시다.
그런데 주님께서 왜 제자들을 선교지에 보내시면서 제일 마지막에 선교받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말씀을 마치고 계실까요? 저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상이 주어지는데 직접 제자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놀라운 상이 주어지겠습니까?

말씀을 거둡니다. 얼마 전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이신 이태석 신부를 방문했던 이재현씨가 이태석 신부 사역지를 방문 후 책을 펴냈습니다. 이재현씨가 그 곳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고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 번도 쉬지 못하고 평생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선교단원 여러분, 여러분은 한 번도 쉬지 못하고 평생 고생만 하시는 분들은 아니십니다. 1 주일만 고생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니카라과 주민들은 한 번도 쉬지 못하고 평생 고생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여러분을 주님의 제자로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속으로 말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아니 여러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평생 고생만 하는 그들을 향하여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아니 여러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니카라과에 선지자의 상, 의인의 상, 냉수 한 그릇의 상들이 하늘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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