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0.04.18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성경본문 :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 22장 12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00418.wmv
Sermon 041810
제 목: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본 문: 요한 계시록 20:11-15, 22:12
유대문학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윗 왕에게 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 승승장구할 때는 삶에 기쁨이 넘쳤지만 아울러 교만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편 그러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큰 절망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었습니다. 하루는 신하들을 불러서 자신의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이 잘 되어도 교만해지지 않고 일이 안되도 절망하지 않는 비결을 강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일이 잘 되어도 교만해지지 않고 안되어도 절망하지 않는 글을 찾아내어서 반지에 새겨서 가져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신하들은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 때 이미 지혜의 사람 솔로몬이 이제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신하들은 솔로몬에게 찾아 가서 지혜를 구합니다. 지혜의 솔로몬은 한 글을 작성해서 왕의 신하에게 주었습니다. 신하들은 솔로몬이 준 글을 반지에 새겨서 다윗 왕에게 가져다 드렸습니다. 다윗은 반지에 새겨진 글을 보고 만족해합니다. 반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 그 후 다윗은 모든 일이 잘 되었을 때 반지를 봅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 삶에 실패가 찾아 올 때도 반지를 봅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
물론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세상 살다가 별거 아닌 것 가지고 교만해지고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슬픔에 잠기곤 하는 인생의 모순된 모습을 잘 묘사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인생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정말로 인생의 모든 것이 잠시 있다가 지나가 버리는 것일까? 오늘 우리가 남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리는데 인생이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이라면 과연 이렇게 헌신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인생은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저 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최후의 심판의 장면이 나옵니다. 정확히는 환상 중에 요한이 보는 최후의 심판의 장면입니다. 20:11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요한이 보는 것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큰 흰 보좌에 하나님께서 앉아 계십니다. 한편 요한은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많은 사람도 그러했겠지만 요한도 땅과 하늘이 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땅과 하늘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자, 조금 전 말씀드린 이야기에 보면 다윗의 반지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다고 말씀드렸죠. ‘이것도 지나가리라.’ 땅과 하늘도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 땅과 하늘도 지나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요즘 보스턴에 봄이 와서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을 만났는데 보스턴의 봄은 박태준 선생의 동무생각이 생각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게 시작되죠.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사실 지난 주 저는 이 ‘동무생각’ 가곡을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죄송한 말씀이지만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이 멋진 땅과 하늘도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그러면 지나가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요? 12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보좌 앞에 죽은 자들이 서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땅과 하늘은 사라질지라도 사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땅 속에 묻혔었지만 다시 살아나서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좌와 사람들 사이에 사라지지 않는 무엇이 또 있었습니다.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책들이 펴 있었습니다. 그러면 책이 몇 권 펴져 있습니까? 책들이 펴져 있는데 또 다른 책이 펴져 있다고 하니 최소한 세권의 책이 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책은 생명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지지만 사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울러 책들과 생명책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은 사람들과 몇 권의 책입니다. 웅장한 하늘과 땅은 사라졌는데 몇 권의 책만 달랑 달랑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책들’은 무엇이고 ‘생명책’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12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곧 책들은 행위가 기록된 책입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책들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아주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땅과 하늘은 사라질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행위가 여러 권의 책에 기록되어서 하나님 보좌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책 생명책은 무엇일까요? 거기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무엇이 기록되어 있길래 생명책은 한권일까요? 15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에는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책은 한 권입니다. 이름만 기록되어 있으니 한권만으로도 충분하겠죠.
여기까지 정리하면, 보좌 앞에 책들이 펴져있고 또 생명책이 펴져 있습니다. 책들에는 행위가 기록되어 있고 생명책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선한 행위를 많이 한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있을까요?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2:8, 9절에 확실하게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좀 이해가 됩니다. 예수 믿는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에 생명책은 한 권입니다.
반면에 여러권 안에 행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행위가 기록된 책이 복수라는 사실을 가지고 좀 이것저것 생각하고 싶습니다. 성경해석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해석을 통해서 신앙에 도움만 된다면 여러 가지 상상력을 동원한 성경해석은 아주 유익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 하나는 사람들의 죄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책에는 사람들의 선한 행위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곧 행위의 책이 두 개가 보좌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저의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이 놓여 있습니다.
오래 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책이 펴 있는데 작은 글씨로 가득 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여기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의 행위의 죄가 기록된 것이다.” 자신의 죄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된 것을 보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잠시 후 다음 책을 또 펴 보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아주 깨알 같이 써 있었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여기는 왜 이처럼 깨알같이 써있습니까?” “그것은 너의 생각의 죄가 기록된 것이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의 죄를 지은 것이 다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또 다시 눈물을 흘립니다. 잠시 후 또 다른 책을 펴 보이십니다. 아예 까만 종이였습니다. 이 사람은 묻습니다. “왜 이 책은 까만 종이로 만들어졌습니까?” 하나님은 질문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가만히 계시더니 입을 여십니다. “이것은 바로 너의 마음이니라.” 이것이 우리들의 죄가 기록된 책이라면 우리들의 선행이 기록된 책은 어떨까요? 마음대로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들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가 둘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악한 행위는 사라지고 선한 행위는 영원히 남을 것인가?.
다음의 이야기가 이 질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러시아의 한 전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 포악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 여인이 착한 말을 하거나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나그네도 돕지 않고 이웃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마을의 신부나 고아에게도 매한 가지 였습니다. 그 녀는 모든 사람들을 멸시하였습니다. 거지가 오면 야단쳐서 쫓아내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느 가난한 사람이 그 녀의 집에 들어 왔습니다. 쫓아가서 문밖으로 내 몰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절뚝이면서 달아납니다. 그것도 성이 차지 않던지 여인은 양파를 그 사람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는 양파를 줍더니 날 살려라는 듯이 달아났습니다.
세월은 흘러 여인은 병이 들었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옥 깊은데로 떨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마침 위에서 자그마한 빛줄기가 비추이더니 천사가 소리칩니다. 천사의 손에는 큰 양파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잡아요. 이것이 당신을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게 할꺼예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홧김에 던진 양파가 그 포악한 여인을 구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러시아의 전설입니다. 정말로 어쩌다 우연히 행한 선한 행위가 모든 악한 행위를 이길 수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전설의 본 의미는 우연히 행한 선한 행위가 이처럼 놀라운 일을 하는데 하물며 마음을 다하여 선한 일을 하면 얼마나 큰 축복을 받겠느냐 교훈을 주기 위한 전설일줄 압니다. 하여튼 이 전설은 새로운 질문을 하게 합니다. 과연 우연히 행한 선한 행위가 영원히 남을 것인가?
오늘 본문 말씀은 이 면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5절 말씀이 이에 대해서 은연중에 답을 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자기의 악한 행위를 안고 영원히 불못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악한 행위는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한 행위는 이들의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곧 그들의 선한 행위는 ‘이것도 지나가리라’의 가사가 되어 갑니다. 러시아의 전설은 그야말로 전설이라는 것입니다. 곧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악한 행위는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반면 그들의 선한 행위는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행위는 어떻게 될까요? 21:26, 27절 말씀을 봉독해 드립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악한 행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구원받은 자의 악한 행위는 감사하게도 ‘이것도 지나가리라’의 가사가 되어 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을 괴롭히는 죄가 있습니까? 그 때 왜 내가 그 죄를 지었나 늘 괴롭히는 죄가 있습니까? 그 죄를 향하여 노래 부르시기 바랍니다. ‘이것도 지나 가리라.’ 웅장한 땅과 하늘이 사라짐과 함께 그 안에서 살다가 지은 우리들의 죄도 사라집니다.
반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선한 행위는 어떻게 될까요? 22:12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이 말씀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상을 주시겠다 말씀하시고 특히 행한대로 갚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선한 행위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한대로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할까요? 믿지 않는 자들의 선한 행위는 사라집니다. 아무리 그 선한 행위가 기록된 책이 두껍고 두꺼울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들의 악한 행위는 영원히 그들과 함께 불못에 거합니다. 반면 믿는 자들의 악한 행위는 사라집니다. 아무리 그 악한 행위를 기록한 책이 두꺼울지라도 사라집니다. 한편 믿는 자들의 선한 행위는 영원한 상이 되어서 천국의 삶을 부요하게 만들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악한 행위가 주님의 보혈을 만날 때 사라집니다. 영원히 사라집니다. 반면 우리들의 선한 행위가 주님의 보혈을 만날 때 영원한 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선한 행위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장 7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한국의 어느 시인이 이와같은 맥락에서 아주 좋은 시를 썼습니다. 시인의 이름은 김형영, 제목은 ‘네가 켜는 촛불은.’
네가 켜는 촛불은 희미하나
촛불을 켜는 네 마음은 하늘이구나
촛불을 켜는 마음아
네가 이 세상의 풍경이 되거라.
우리가 키는 촛불은 우리가 사는 이 땅과 하늘에 희미한 빛만을 남겨 주지만, 그래서 시간이 되서 없어지지만 그 마음은 영원히 남아 도리어 큰 우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우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행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땅과 하늘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땅과 하늘은 언젠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 땅과 하늘을 밝히려고 켰던 그 촛불을 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를 밝히는 빛이 됩니다. 만일 우리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면 말입니다.
사랑하는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악한 행위는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선한 행위는 영원토록 남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억지로 양파 한 조각 준 것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하물며 기쁨으로 주는 것은 어떻게 될까요?
말씀을 거둡니다. 한 달 전 고 김순규 장로님께서 소천 받으셨습니다. 천국환송예배를 준비하던 중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두개의 거룩한 책 (Holy Book) 거룩한 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성경책 신구약 66권으로 되어 있는 이 성경책이 거룩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언제까지 필요하느냐, 이 땅에 사는 동안 필요합니다. 언젠가 없어질 이 땅위에 사는 동안만 필요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이 성경책을 우리들 삶의 한 복판에 거룩한 책으로 놓아야 합니다.
두 번 째 Holy Book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성경말씀대로 산 바로 그 행위의 책입니다. 말씀대로 산 우리들의 의로운 행위가 기록된 책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천국의 삶은 바로 이 두 번째 Holy book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사는 삶은 바로 이 두번째 거룩한 책에 의하여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책이 얇으면 얇게 천국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거룩한 책이 두꺼우면 두껍게 천국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신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두 가지 holy book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holy book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holy book을 잘 읽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두꺼운 holy book의 소유자가 됩니다. 첫 번째 holy book을 소홀히 여기면 두번째 holy book은 조촐한 holy book이 됩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첫번째 holy book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기록된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holy book을 멋지게 써 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사람과 행위입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의 선한 행위는 영원히 남아 천국을 밝히 비추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