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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약속

날짜 : 2009.07.05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두 가지 약속
성경본문 : 신명기 5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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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앤드루스라는 분이 어느 날 한 호텔 방에서 셔츠를 다리고 있었는데, 옆방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뉴스 앵커는 ‘이 주의 인물(Person of the week)’순서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주인공을 발표하는 순간입니다. “그럼 이 주의 인물을 소개합니다. 노먼 볼로그 씨입니다.”
앤드루스 씨는 다리미를 내려놓고 얼른 텔레비전으로 달려갔습니다. 노먼 볼로그라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자의 멘트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주의 인물, 노먼 볼로그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20억 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볼로그 씨는 메마른 땅에서도 키울 수 있는 옥수수와 밀 품종을 개발한 사람이었고 현재 91세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특별한 옥수수와 밀 재배법을 발명하여 아프리카, 유럽, 시베리아, 중남미 등지에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분입니다.
그런데 앤드루스 씨가 알기로는 실제로 20억의 생명을 구한 사람은 노먼 볼로그가 아니라 헨리 윌리스였습니다.
헨리 윌리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임 시절 부통령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러나 전직 농무장관이었던 윌리스는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 기간에 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대신 트루먼이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윌리스가 부통령직을 수행하던 시절 그는 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멕시코에 농장을 지었습니다. 이 농장은 메마른 땅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옥수수와 밀의 품종을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윌리스는 노먼 볼로그라는 젊은 사람을 고용하여 이 농장 운영을 맡겼습니다. 그리하여 볼로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이 주의 인물로도 선정된 것입니다만, 실제로 20억 명의 생명을 구한 사람은 윌리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윌리스가 그러한 업적을 세우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있습니다. 아니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조지 와싱톤 카버라는 유명한 식물학자입니다. 카버가 대학생시절 자기의 교수님의 아들인 윌리스와 매 주말 식물 조사를 다닙니다. 윌리스가 여섯 살 때 카버는 이 꼬마에게 식물에 대한 사랑을 키워주는 한 편,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커다란 이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카버는 이 작은 꼬마에게 삶의 방향을 일러주었고, 이후 이 꼬마는 자라서 미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카버가 이 주의 인물에 선정됐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카버는 어린 시절 납치를 당합니다. 이 당시는 노예제도가 성행하던 시절이었는데, 카버 씨가 어릴 때 카버 씨 가족이 불한당에게 납치를 당합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이 납치당한 카버를 모제스라는 사람이 구해줍니다. 그리고는 대학교육까지 시킵니다. 그렇다면 카버를 구해준 모제스 씨가 이 주의 인물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상이 앤드루스 씨가 알고 있는 옥수수와 밀 재배법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대략 정리해드리면, 모제스 씨가 카버 씨를 구했고 카버 씨는 윌리스 씨를 어린 시절에 깊은 감명을 주었고, 윌리스 씨는 노먼 볼로그 씨를 고용하여 멕시코 마른 땅에 옥수수와 밀을 기르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노먼 볼로그 씨가 20억의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20억의 사람들은 각자 위대한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모제스 씨의 한 생명을 살린 삶은 현재 상상할 수 없는 역사를 펼쳐나가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물론 혈육으로 이어지는 3, 4대는 아니지만 어떤 모양의 3, 4대이건 3, 4대가 지난 후 20억의 인구를 통해서 그의 위대한 삶의 자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제스 씨가 이런 위대한 자취를 남겼는데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도저히 그와 같은 자취는 남길 수 없을까요?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놀라운 자취를 이 땅에 남기고 있거나 남기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 땅에 남겨야할 자취는 어떠한 자취인지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된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명령한 말씀입니다. 그 중 오늘 본문 말씀에는 십계명을 재차 역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동안 그토록 괴롭혔던 40년 광야 생활을 뒤로 하고 이제 멀리 요단강 건너 보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민족은 희망 가운데 모세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모세는 지금 가나안 땅으로 건너갈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 명령할까요? 2절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하고 광야생활을 막 시작 하였을 때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과 언약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명령을 준행하면 반듯이 축복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받으려면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는 좀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이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민족은 사뭇 놀랐을 것입니다. 호렙산의 언약은 자신들의 선조들에게 주신 언약인줄 알았는데 살아 있는 자기들에게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산 자들을 위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산 자들이 말씀을 지킬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계속 모세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4,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말씀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음을 말하곤 갑자기 분위기는 돌변합니다. 불타는 호렙산을 언급합니다. 모세 자신이 불타는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말씀을 받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모세는 지금 약속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은 거저 받은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나가 받은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받은 말씀이니 얼마나 큰 위력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안고 모세는 말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 문장구조는 이 당시 역사적인 배경에 비춰서 풀이하면 구원자가 피구원자에게 명령하는 문장구조라고 합니다. 곧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하신 분이니 너희는 나의 명령에 귀를 기우려라’ 하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구원하신 분의 명령을 들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첫 번째 명령이 무엇일까요? 7절 이하 말씀입니다.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구원자가 피구원자에게 첫 번째 명령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소위 말하는 십계명의 첫 두 계명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더 눈에 띕니다. 9절 중반절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 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이를 듣는 이스라엘 인들은 등골이 오싹합니다. 죄를 지으면 삼사 대까지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무서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지은 죄가 3, 4대까지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몸이 잠시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십계명 없이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십계명을 안 지키다가 그 벌이 삼사 대를 가느니 차라리 없이 지내는 것이 좋겠네.” 그러면서 그들은 생각해 봅니다. “3, 4대라면 나의 죄가 백년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군….”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얼어붙습니다. 오늘 자신이 짓는 죄가 앞으로 백년간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다들 고개가 푹 숙여졌을 것입니다. 이처럼 얼어붙어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얼어붙었던 이들은 더욱 놀랍니다. ‘천대까지….’ 1대를 30년이라고 생각하면 천대이면 몇 년이죠? 3만년. 모세가 살던 시절이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입니다. 십분의 일 가량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것은 아직도 이 땅에서 2만 7천 년간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삶의 자취가 이 땅에서 지워지려면 아직도 2만 7천년이 남아 있습니다. 반면 모세가 지었던 죄의 결과는 벌써 이 땅에서 사라진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백년밖에 효과가 없으니 말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인들은 십계명을 받고 모험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죄를 짓다가 하나 착한 일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하루 종일 지은 죄는 몇 년간 남아 있습니까? 100년간 남아 있습니다. 착한 일은 3만 년간 남아 있습니다. 백년이 지나면 자기들이 지은 죄는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착한일은 3만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3만년은 이 땅에서의 효과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영원토록 남아 있습니다.

이제 이들은 생각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십계명이 아니라 천계명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어기면 100년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지키면 3만년 효과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영원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계명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이제 귀를 기울여 계속되는 계명을 듣고자 합니다. 더 이상 호렙산의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호렙산은 자비의 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들은 꿈에 부풀기 시작합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말씀대로 멋지게 살아야지 우리의 순종은 영원한 효과가 있으니까.” 하나님은 지금 호렙산에서 놀라운 축복의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아니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이스라엘민족에게 두 가지 하나님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는 지은 죄는 3, 4대 영향을 미친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행한 의는 천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 두 약속을 안고 지금 이스라엘민족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시작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들이 이 두 약속을 받은 지 3,50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이 두 약속이 누구에게 주어졌을까요? 지금 살아있는 우리들이 아닐까요?
이 두 약속은 우리들의 존재를 두 가지로 구분하게 합니다. 3, 4대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존재, 천대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존재. 이 두 가지 ‘나’가 함께 엮여져 ‘나’라는 존재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 어느 목사님이 하신 설교가 종종 생각이 납니다. 그 때가 제가 3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 분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부터 50년 후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십시요.” 그 때만해도 약 25년 전인데 80을 넘기시는 분들이 아주 드물 때였습니다. 곧 이 분은 ‘죽은 후의 삶을 생각하자’라는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설교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후의 당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요.”
교우 여러분, 지금부터 100년 후 우리는 우리의 죄의 효과를 이 땅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반면 우리의 의로웠던 삶은 100년이 지남과 더불어 하나 둘 민들레 꽃이 피듯이 피어날 것입니다. 아무도 막지 못하는 위력을 안고 피어 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력이 백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이 아니라 천대로 이러집니다. 천대가 지나고 나면 우리 모두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나라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된 경험을 얼마 전 겪어 보았습니다. 어느 친구 목사님 가정이 이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히스패닉 사람들을 고용해서 이사를 한다는 계획까지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 가정이 이사하는 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사람에게 어느 목사님이 오늘 이사한다는 말을 전했더니, 갑자기 25년 전 이사하던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그 때 어느 가정이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을 사 오셨는데 바쁘고 경황이 없었을 때 너무 고마웠었던 생각이 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혀 잊혀졌던 그 두 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후로는 전혀 연락이 없었으니 그분이 어디에 계시는지는 더욱이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는 그분들에 대한 빚을 갚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25년 전에 진 빚을 이제야 갚는데 다른 사람에게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KFC에 가서 프라이드 치킨을 사서 이사간 댁으로 찾아 갔습니다. 전화를 하고 6시 반쯤에 찾아 가 보았더니 네 명의 십대 아이들이(teenager) 손꼽아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5년 전의 착한 일이 드디어 한 개의 민들레가 되어 피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 네 명의 아이들을 통하여 25년 후에는 네 개의 민들레가 피게 되지 않을까요? 100년 후에는 더 많은 민들레가 피게 되지 않을까요? 천년, 만년 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민들레가 피게 되지 않을까요?
최근 저는 아브라함의 생애에 대해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는 창세기 17: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그런데 호렙산에서 지금 하나님은 아브라함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을 열국의 아비로 삼으시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행한 것이 천대에 걸쳐서 영향을 받게 되어 있는데 천대를 지나면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나’라는 작아 보였던 자의 삶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누구나 다 아브라함과 같은 존재입니다. 열국의 아비 내지 어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확인시키시기 위하여 요한계시록 5:10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여기서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땅으로 해석해야 할줄 압니다. 호렙산에서 보신 그 놀라운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놀라운 나라로 발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각자의 놀라운 왕국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왕국을 만드는 재료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아름다운 일들입니다.

최근까지 저를 늘 따라 다녔던 어떤 교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신학교를 다닐 때입니다. 교회사 교수님이셨는데 교회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이 많은 공헌을 하기도 하였지만 종종 실수도 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러나 그들이 한 실수를 아직도 교회사적으로 고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우리와 같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이 어떻게 그런 위대한 인물들의 업적을 건드릴 수 있냐’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음과 즉시 저의 뇌리 깊숙이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임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입력이 되었습니다.
저뿐이 아닙니다. 많은 교우분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위대한 분들은 따로 존재합니다. 우리들은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호렙산에 서 보십시요. 하나님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를 통해 펼쳐질 위대한 나라를 보고 계십니다. 그 놀라운 나라를 보시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 3, 4대 징벌하시는 이유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3, 4대 징벌조차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시라도 좋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금과 같은 시간에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순종케 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3, 4대 징벌이 놓여 있는데 죄를 지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3, 4대 징벌을 피하기 위해 선한 일을 하다보면 그 결과는 놀라운 것입니다. 아름다운 왕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 두 가지 약속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 의로운 삶이 천대까지 번성케 하시려고 우리의 죄를 3, 4대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약속은 결국 한 약속입니다. 최고의 약속입니다. 우리 각자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노릇하게 하시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말씀을 따라 사십시다. 말씀 따라 사는 것은 곧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아름다운 왕국 건설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왕국 건설에 동참하십시다. 오늘은 어떤 일로 왕국건설을 하시겠습니까?

말씀을 거둡니다.
Tony Dungy(토니 던지)라는 유명한 풋볼(football)코치가 있습니다. 작년까지 인디애나 콜츠(Indiana Colts)의 코치였습니다. 작년 마지막 경기를 마친 후 그는 다시 코치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아닌지 1주일 후에 발표하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분이 훌륭한 크리스챤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분의 말을 일축했습니다. “괜히 하는 말이지, 또 다시 코치 생활할거야”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도 많은 선수 내지 코치들이 은퇴를 선언한 후 또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대표적인 사람이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그런데 1 주일 후 그는 발표하기를 코치생활은 그만 접고 감옥 선교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과 오바마 행정부가 원하는 일은 다르기에 같이 일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에 갇힌 자들로 그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기를 원한 것입니다. 천대를 내다보았을 때 그는 쉽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약속은 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삶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금 살아있는 모든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교우 여러분, 어느 약속을 택하시겠습니까? 3, 4대에 이르는 약속? 천대까지 이르는 약속?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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