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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추게 하여

날짜 : 2007.05.20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추게 하여
성경본문 : 마태복음 5장 14-16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5-20-2007.wmv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수님에게 불평을 해 댔습니다.

“저희가 세계화나 세상 사람들이 상호 보완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굳이 배울 필요가 있습니까? 세상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느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저희가 알아야 하죠?”

교수님이 대답합니다.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가르친 학생중 하나를 50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학생은 몹시 화가 나서 ‘무엇 때문에 제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고향의 행정 체계에 대해 그렇게 세세히 배웠는지,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배운 게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하더구나. 그 학생은 아무도 자기에게 사회에 나가면 환경이나 오존층, 자연 보호, 삶의 질, 식향난, 물가 상승, 원자재 부족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며 불만스러워했다. 게다가 그는 이런 문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란 사실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단다. 왜 아무도 자기에게 경고하지 않았는지, 왜 자신이 좀 더 나은 교육을 받지 못했는지, 어째서 교수님들은 이런 문제들을 제 때에 그가 인지하고 이해해 해결책을 찾아보게 하지 않았는지 의아해 했다. 선생들은 그가 지구의 일원임을 깨우쳐 주지 않았다. 마침내 그 학생은 불만에 가득 차 이렇게 외쳤다. ‘교수님들은 제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지 않으셨어요. 제 두 손으로 기계를 다루고 제 두 눈으로 망원경과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제 두귀로 전화나 라디오, 다른 기계들에 귀를 기울이고 제 두뇌로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가르쳤어요. 하지만 제가 인류 전체를 향해 마음을 열고 사랑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았어요 교수님들은 제게 진리의 절반을 숨긴 거라고요.’”

교수님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제자에게 꿈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혜롭게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자기의 제자가 사회에서 겪을 것은 미리 내다 본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졸업장만을 원하는 학생이었음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많은 공감을 갖게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과 비슷한 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Robert Cole이라는 유명한 Harvard Univ. 정신과 교수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엔지니어이었는데 아버지의 스로건이 있었습니다. “Better living through chemistry.” (“화학을 통한 더 나은 삶”) 아버지는 공학의 발전이 미국의 장래를 약속함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는 공학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전화를 만든 Alexander Bell에서 시작하여 전기를 발명한 Thomas Edison, 자동차의 왕 Henry Ford 그리고 MIT에 이르기 까지 그는 큰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84세를 살았는데 젊은 시절은 큰 희망을 안고 엔지니어의 길을 갑니다. 80세가 넘으면서 점점 그 동안 품었던 꿈이 참 된 꿈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전쟁과 Holocaust(유대인 학살)등을 보면서 온 세상은 불확실과 의문의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곧 과학의 발전이 평화의 세계를 이룩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본 것입니다. Robert Cole박사의 아버지에게는 과학이 그의 우상이었습니다. 과학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건설될 것이라는 좋은 의미의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도 세상을 온전케하는데 실패했음을 보고 안타까워합니다.

이 분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신 분 같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면서 이 화학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반 만 알고 세상을 위해 산다고 착각했던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졸업 축하 예배로 드립니다. 먼저 졸업하시는 교우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먼저 신나는 말씀으로 축하를 드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드린 말씀을 통하여 저는 이미 두가지의 염려를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첫번째가 과연 여러분은 학창시절에 사회에 대해서 얼마나 배우고 졸업하시는지 염려의 뜻을 전한 셈입니다. 또 하나는 여러분이 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여 무엇을 이루워 놓았어도 그 것이 과연 선한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우려를 표명한 셈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우려를 표명하는데 우리주님은 졸업하시는 여러분께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교우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이 어떠한 교육을 학교에서 받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반쪽 교육을 받았는지 온전한 교육을 받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갈고 닦은 학문의 세계가 과연 사회에 공헌 할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도 너무도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오늘 아침 졸업생 교우님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그런데 사실 졸업장은 손에 쥐었지만 아직도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 같고 세상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는 것이 많은 것 같은데 세상의 빛이 되라니 좀 자신이 없지 않습니까? 좀 더 사회에 나가서 경험을 쌓으면 모르겠는데 지금 세상의 빛이라니 좀 부담이 되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이 2000년 전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면 그 때 제자들은 많은 것을 배워서 제자들에게 빛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분명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빛은 우리의 공부와 관계가 없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학교 성적이 좋건 안 좋건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지금 세상은 빛을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빛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빛이 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더 배워야 할 것이 많이있고 배울 만큼 다 배운 다음에야 빛이 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더 많이 공부하면 빛의 삶을 감당하실수 있을까요? 어두움의 세계로 인하여 고민하는 자들이 빛의 삶을 살아 갑니다.

시몬 베이뉴라는 유명한 불란서 사상가는 세상의 모든 학문은 우상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학문은 참된 진리로부터 우리를 다른 길로 가도록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이나 심리학이나 철학 그 어떤 학문에도 유혹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Fantasy land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긍지를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고 더욱이 그 일로 인해 낙원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으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고 fantasy land에 빠져 있는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학문에는 이런 유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몬 베이뉴는 대표적인 예로 Karl Marx의 공산주의를 듭니다. 이론적으로는 너무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듯이 그것은 하나의 우상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 안에 있는 학문의 모순입니다.

그렇다면 공부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 빛이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는것입니다. 도리어 더 큰 우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공부가 우상이 안되고 빛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빛’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에스키모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빛의 시작에 대한 전설입니다. 아직 빛이 없었던 때입니다. 까마귀가 먹이를 찾는데 빛이 없으니 빛을 사모했습니다. 몹시도 사모했습니다. 까마귀의 간절한 사모 때문에 빛이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일년의 반은 깜깜한 밤가운데 사는 에스키모들은 겨울이 되면 그누구 보다도 빛을 사모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빛은 간절히 사모할 때 찾아오는 것이라는 전설이 만들어진 것같습니다.

이 전설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빛은 간절히 사모할 때 찾아 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시는 말씀 안에는 ‘너희는 빛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가 되어라’ 하는 멧세지가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빛을 사모합니까? 어두움을 느낄 때가 아닙니까? 결국 이 세상의 어두움을 통감하며 빛을 사모할 때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세상에서 빛이 된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보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탈렌트를 소유한 자들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마틴루터킹 목사와 같이 세상의 어두움을 통감하고 빛을 사모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의 이 말씀 안에는 엄한 명령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 안에서 빛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니다. 어떤 분은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의 빛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우리도 빛이 된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십자가의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 결과 그는 부활하시고 우리들의 빛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당신의 빛을 주시길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그 빛이 나타나나요? 우리가 간절히 어두움의 세계 안에서 고민하며 빛을 사모할 때 예수님의 빛은 임하는 것입니다.

빛을 간절히 사모하는 가운데 공부를 할 때 우리의 공부는 유익한 공부가 될 줄 압니다. 세상의 어두움을 인지하고 안타깝게 사모할 때 우리는 참된 빛을 온 세상이 필요한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인지라 자기도 모르게 빛을 사모하는 열정을 잃어 갑니다.

사실 요즘 대학을 졸업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더욱 밝은 곳으로 가려는 것입니다. 행복한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려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으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빛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졸업생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으로 빛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두운 곳을 찾아갈 줄 아셔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인지라 자꾸 나태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늘 살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시간을 내어서 종종 빛을 사모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종종 아니 정기적으로 세상에 어두운 곳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해 니카라과 선교를 가는데 세상의 어두운 곳을 만나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 외에도 각자 방법을 모색하면 됩니다. 사실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인터넷을 킬 때마다 기아문제 싸이트를 방문하곤 합니다. 저 스스로를 빛의 삶에 가까이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니카라과 선교단원 중에 치대를 졸업하는 반 한국인 반 백인이 있습니다. 그의 계획은 졸업 후 1년은 니카라과등 선교지를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1년후에 다시 수련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의 계획을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빛의 자녀의 삶을 사시는 분입니다.

교우 여러분,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사모하는 마음을 잃었을 때 어느새 다른 무엇을 섬기는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빛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빛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거저 받을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돈 주고 사고팔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과 공기 거저받는 것이 아닙니까? 또 하나 대표적인 것이 빛입니다. 15절을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주인이 등불을 켜놓아서 빛이 필요해서 그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빛을 거져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밤에 starbucks에 커피마시러 들어 갔는데 주인이 ‘커피값 얼마, 빛값 얼마’하시는 것 보았습니까? 물론 우리들이 낸 돈에서 전기값을 지불하겠지만 그 빛을 가지고 이윤을 남기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빛은 거저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은 이 시간 우리들에게 이웃에게 가장 귀한 빛 가장 귀하기에 거저 줄수 밖에 없는 빛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무엇인가를 거져 줄 때 그 때 빛이 나게 되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특히 학교생활을 막 마친 졸업생들이나 학교생활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거저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 어느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학생이 시험을 보았는데 전혀 모르는 것이 나왔습니다. 궁리 궁리하다가 다음과 같이 답안을 써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교수님은 당연히 신학교 교수님이니 하나님을 믿는 교수님이십니다. 이 교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교수님도 학생 못지 않게 지혜가 넘치는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100점, 아무개 학생 0점’

무척 웃기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러나 웃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깊은 연관이 있는 이야기이기에 웃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유머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벗어나선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웃으셨으면 분명히 여러분의 삶과 이 이야기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튼 학교라는 곳은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사이에서 늘 줄다리기를 하게 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인간의 노력이 중요함을 절감하게 하는 곳입니다. 속된 말로 표현해서 공짜가 없는 곳이 학교입니다. 우리의 삶은 노력의 댓가임을 피부로 느끼고 그렇게 살아온 졸업생들에게 주님은 지금 엄청난 것을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러면 노력없이 이루워질수 없는 졸업장을 손에 쥔 여러분들이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될수 있을까요?

이웃에게 거저 빛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16절 말씀에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면 우리의 빛을 어떻게 거져 이웃에게 줄수 있을까요? “착한 행실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착한 행실은 무엇일까요? 곧 최고의 것을 거져 주는 행위입니다. 이것의 대표적인 모습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은 최고의 것을 십자가에서 거져 주셨습니다. 주님의모습이 바로 착한 행위의 모델입니다. 최고의 것을 거져 주는 것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삶이 구체적으로 최고의 것을 이웃에게 거저주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손안에 쥐어진 졸업장이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형태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 졸업장을 하나님께서 거져주심을 인정하실 때 참으로 최고의 선물을 거저 받는 자가 됩니다. 또 이러한 자들이 빛으로 나타납니다.

“십자가의 선물은 거저지만 졸업장은 나의 노력입니다”는 모순된 생각일줄 압니다. 십자가의 선물이 선물이었던것처럼 여러분의 손 안에 쥐어진 졸업장도 선물입니다.

졸업장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세우셨습니까? 그런데 그럴수 있는 건강을 주구가 주셨습니까? 거저 받은 것이 아닙니까? 그 때 그 때마다 지혜를 누가 주셨습니까? 거저 받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졸업장은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안고 이웃에게 거저 주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빛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일상 생활에서는 거저 주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왜 일상생활에서 거져 주지 못 할까요? 그 이유는 최고의 것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것을 소유한 자는 거저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학교 생활에 젖어 있는 분들은 더욱 어렵습니다. 학교 생활에 푹 젖은 후 막 나오신 여러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한편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이 최고의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자들은 거져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점은 거저 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현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Robert Kuttner라는 분이 충격적인 책을 썼습니다. 책 제목은 “Everything for sale.” 경제에 관한 책이라서 저는 서론과 결론 밖에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의 결론은 오늘의 세상은 모든것이 다 돈을 주고 받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결혼생활도 돈 주고 받는 생활이 멀지 않은듯 합니다. 결혼 생활도 변호사 앞에서 싸인사고 give and take하는 시절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여러분은 자랑스런 졸업장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교우 여러분, 졸업생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이것은 가장 놀라운 선물입니다. 거져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 도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저 최소의 선물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겨저 있는 말씀입니다. 졸업장이 거저 받은 선물인 것처럼 앞으로도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을 약속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매일 매일 우리의 필요에 따라 최고의 선물을 거저 주십니다. 우리가 빛의 사람이 되도록 거저 주시고 또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껏 거져주는 삶을 사십시다.

빛의 삶을 사십시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간절히 사모하십시다. 열정적으로 빛을 사모하십시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소유한 기쁨을 안고 우리의 것을 거저 주는 삶을 사십시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Harry Lewis 라는 하바드 대학 교수이자 학장을 지냈던 분이 있습니다. 그가 작년도 충격적인 책을 펴 내었습니다. 책 제목은 “Excellence without soul”입니다. 책 제목만 읽어도 무슨 내용의 책인지 느낌이 오실줄 압니다. 요즘 하바드를 비롯하며 많은 유수한 대학들이 학문적 excellence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지로는 혼이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학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현대 교육의 사명안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적응시키는 감각마저 잃었습니다.”(“Universities lack confidence that they know what they are doing. They have lost their sense of how to fit their problems into an encompassing educational mission.”) 정말로 놀랄만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 더욱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의 학교들이 갈팡질팡할수록 더욱 우리의 빛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십시다. 그리고 우리는 최고의 것을 소유한 자 답게 거져주는 삶을 사십시다.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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