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07.01.07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나의 영광 이스라엘
성경본문 : 이사야 4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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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친구에게서 받은 시 한 편을 먼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 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 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 Ran) …감옥에서 쓴 시 –
특별히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귀절은 세번째 귀절인것 같습니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시인은 감옥에서 이 시를 썼는데 감옥 안에서 아직 살지 않은 최고의 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시 귀절을 들으며 무엇을 느끼십니까? 우선 많은 위로가 될 줄로 압니다. 아울러 막연한 듯 하면서도 은은한 희망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을 꿈꾸게 될 줄 압니다.
그런데 최고의 날들은 과연 어떤 날일까요? 대학교 졸업장을 받은 날? 그럴리가 없을 줄 압니다. 그러면 그 졸업후의 날들은 최고의 날이 안 될테니 말입니다. 경연대회에서 1등 하는 날? 글쎄 최고의 날들 중에 하루는 될지 몰라도 그날이 최고의 날이라면 더 이상 경연대회를 나가게 되지 못할 때 인생의 최고의 날은 지나간 것이죠. 결혼하는 날? 역시 좋은 날 중에 하나는 될지라도 최고의 날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좀 신앙적인 관점에서 살펴 보면, 예수 믿고 구원 받은 날? 최고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날을 최고의 날로 삼으면 더 이상 이 땅위에서는 최고의 날을 맞이할 수 없으니, 구원받은 날을 최고의 날로 삼고는 싶은데…, 좀 석연치 않은 면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학교 졸업한지도 오래고, 결혼한지도 오래고, 구원받은 지도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분들을 위해서 과연 최고의 날은 오고 있을까요? 아직 살지 않은 2007년도에 최고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기다리고 있다면 그날들은 과연 어떤 날들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살 때 우리는 바로 그 최고의 날들을 맞이하게 될까요? 본문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다짜고짜 말씀하십니다.
“너희 패역한 자들아.”
오늘 본문말씀은 이사야를 통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 지칠대로 지쳐있는데 거기에다가 더 찬 물을 끼얹습니다. “너희 패역한 자들아.” 욕설을 퍼부으십니다. 욕설을 퍼부으셨으면 당연히 무엇이 쫓아와야 합니까? 저주가 튀어 나와야죠. “패역한(망할) 놈들아, 나가 xxx” 그런데 “패역할(망할) 놈들아” 하시고는 “장부가 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 말씀은 끝까지 잘 들어 보셔야 합니다. 욕설로 시작했지만 끝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종종 여성성경공부시간에 어느 교우님이 간증하시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당신 부모님이 화가 나시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고 합니다. “축복받을 년, 축복받을 년….” 부모님 마음이 하나님 마음과 비슷한 가 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장부가 될 패역한 놈들, 장부가 될 패역한 놈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축복받을 길까지 말씀하십니다.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
하나님의 축복받는 길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기억하고 생각만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두가지 예상치 못하는 당신의 엉뚱한 면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는 패역한 자가 장부가 되게 하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장부가 되게 하되 너무 쉽게 장부가 되게 하십니다. 기억하고 생각만하면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까요? 이 일을 기억하고 이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이 어떤 일이던 장부만 된다면야 무엇인들 못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면 이 일이 어떤 일인지 알아 봐야겠습니다. 어떤 일이기에 패역한 자들을 장부가 되게 할까요?
주석가들의 견해를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이 일은 이사야서에 기록된 그 전 역사를 통틀어서 말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사야서에서 무엇이 기록되었을까요? 이사야서에 기록된 역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 이후로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나뉘어집니다. 곧 이 두 나라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나라의 두가지 이야기가 주된 주제입니다.
이사야서에는 먼저 북왕국의 멸망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왕국이 앗수르왕국에 멸망하는 비극적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남왕국의 이야기인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남왕국은 앗수르왕국에게 승리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붇왕국은 죄를 지어 멸망했고 남왕국은 회개를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기억하길 원하셨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멸망했고 회개하였을 때는 구원받은 이야기를 기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장부가 됩니다.
교우 여러분 이 땅에서 장부로 살아가는 법 간단합니다. 2007년도 장부로 살아가는 법 간단합니다.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벌을 내리셨고 회개하였을 때는 엄청난 축복을 내리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기억하면 장부가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 진정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계속해서 하나님은 ‘기억’을 강조하십니다. 9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이가 없느니라.”
8절에 ‘기억하라 생각하라’ 말씀하셨는데, 9절에 또 ‘기억하라’ 말씀하시는 것을 보아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의 의미는 보통 심오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세번씩이나 강조하시는 것을 보면 그냥 기억이 아니고 깊은 기억이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특별한 기억을 원하시는 것같습니다. 옛적 일을 기억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체험하게 하는 깊은 기억을 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기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느끼는 깊은 기억, 깊은 생각을 뜻합니다. 깊은 기억의 사람들은 죄로 물든 과거사 가운데서 심오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깊은 기억속에 잠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다 보면 신기한 체험을 합니다. 하나님은 죄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벌주시는 분인것 같아 보였지만 실로 기가막힌 사랑으로 함께했던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과거사를 깊게 기억해 보십시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손길을 체험할 것입니다. 과거사를 생각만하면 치가 떨리시는 것은 아직 깊은 기억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건성으로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고 받아드리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자녀에게 “축복받을 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을 소개해 드렸는데 그 분이 남달리 머리가 좋아서 그러한 고백을 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분은 깊은 기억의 사람일줄 압니다. 깊은 기억의 사람들은 기가막힌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 하나님을 늘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기억하라, 생각하라, 기억하라”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2007년도를 시작하면서 과거사를 한번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서 신비스러운 사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까지 깊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깊은 기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미래의 일을 보여주십니다. 10절말씀입니다.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은 깊은 기억의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미래까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깊은 기억 안에는 우리들의 죄와 순종, 그에 따른 벌과 상급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보는 미래의 일은 우리들의 죄와 순종에만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의를 넘어서 찬란하게 빛나는 세상을 이들은 봅니다. 하나님은 단지 인간의 죄와 의를 벌하고 축복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되어지는 일들, 아니 되어질 일들은 단지 인간의 행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의를 넘어서 있는 놀라운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것을 뛰어 넘어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야마는 권능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깊은 기억 속에서 우리의 과거사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아는 자들은 바로 그 하나님의 손길이 미래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실 것을 바라 보며 감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과거에 기가 막히게 일하셨던 하나님은 미래에도 더욱 놀랍게 일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의를 위해서 인간의 의와 상관없이 일을 벌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의대로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면 과연 우리가 최고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최고의 날이 왔다 해도 얼마나 하찮을까요?
그러면 2007년도를 맞이하면서 신나는 마음으로 새해를 기대해 보십시다. 우리의 행함을 넘어 임하실 놀라운 축복의 나날을 기대해 보십시다.
그러면 이 최고의 날은 어떤 날일까요?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을까요?
먼저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의 날은 어떤 날이었는지 살펴 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이 최고의 날을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2절입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아마도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자기들의 죄와 의로 인한 상벌 주시는 하나님은 믿겠는데, 자기들의 행위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로우심만으로 역사하시는 것은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깊은 기억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은 가슴을 치면서 말씀하십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이것은 신학적으로 설명하면 메시야가 오실 것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곧 하나님의 의는 패역한 이스라엘을 위해 메시야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통해서 패역한 이스라엘은 영광의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메시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영광의 이스라엘로 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최고의 날을 맞이합니다. 패역한 이스라엘을 영광의 이스라엘로 삼으시는 날이 바로 이스라엘의 최고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메시야가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람들은 모두 영광의 이스라엘인들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패역했었을지라도…. 그리고 이들은 그 후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메시야와 과거사에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손길과는 어떤 관계일까요? 깊은 기억의 사람들은 바로 이 예수님이 그들의 과거사 안에 들어와 기가 막히게 그들의 죄로 물든 삶을 아름답게 꾸미신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들은 기가 막힌 손길로 그들을 위하여 미래를 가꾸고 계신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분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 되셔서 몸소 그들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니 최고의 날이 아니겠습니까?
어제 어느 교우분이 고등학교때 늘 학교에서 1등을 하였는데, 당신 때문에 2등을 하는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2등 학생의 부모님이 당신의 학비까지 대준 적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번 학비 대주신 분을 잊지 못하시는데, 하물며 평생 도우시는 분, 그분을 우리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 분을 만나는 것이 가장 최고의 날이 아니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그 동안 여러분을 몰래 도와 주었던 분이 계셨다고 가정하십시다. 보이지 않던 그분이 나타나셨다면 어떨까요? 최고의 날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번 처음 드렸던 질문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의로 인해 우리에게 찾아올 최고의 날들은 어떤 날일까요? 올해에 우리를 찾아올 최고의 날들은 어떤 날일까요? 졸업하는 날? 1등하는 날? 우리의 과거사가운데 신비하게 일하셨고 우리의 미래사 안에서 신비하게 일하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날이 아닐까요?
엇그제는 유대인 크리스챤 예배에 참석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쉐마의 밤을 통해서 우리 이웃인 부르클라인 주민들을 위해서 기도하곤 했고, 기난번 한국 문화 축제때는 유대인들과 무대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는데, 저는 한번도 유대인 크리스챤들의 예배에 참석해 보지 않아서 한번 참석해 보았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유대교의 전통과 기독교의 전통을 잘 조화시키면서 예배를 인도하려는 노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시는 분의 간증이 인상 깊었습니다. 오랫 동안 유대교인이었던 분인데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다가오는 체험을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은 돌렸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을 영접한 후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매일 한다는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과거에 신비하게 당신의 삶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직접 만난다는 간증이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최고의 삶을 누리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밀워키의 컴퓨터 세일즈 워먼들이 시카고에서 열리는 컨벤션(convention)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남편들에게 저녁시간 전에 돌아오겠다하고 시카고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컨벤션은 시간이 지연되었습니다. 모두 기차표를 들고 기차역으로 달려들어갔습니다.
그중 한 여인이 급히 뛰어가다가 사과가 진열되어있는 바구니(basket)을 넘어뜨렸습니다. 10살난 소년이 학비를 위해서 사과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뒤는 보지 않고 기차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모두 기차에 탔습니다. 그러나 그중 한 여인은 잠시 어린 아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기는 다음 기차를 타고 가겠다고 하면서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바닥에 흩으러진 사과를 주웠습니다. 몇 사과는 상했습니다. 여인은 소년에게 20불짜리를 건네 주면서 말합니다.
“20불을 받아요. 우리가 하루 장사를 망친 것이 아니었기를 바래요. God bless you.”
그런데 그 소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년이었습니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기 위하여 걸어가는데 소년이 소리지릅니다.
“Are you Jesus?”
여인은 생애 최고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Are you Jesus?”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최고의 날이 있을까요?
교우여러분, 우리로 인해서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그 때가 바로 우리들의 최고의 날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영광돌리는 날을 자신의 최고의 날로 여기는 자들은 매일매일을 최고의 날로 맞이하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교우여러분, 최고의 날은 우리가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날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닐께 영광 돌리는 날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늘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셨다면 바로 오늘이 나에게는 최고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이 최고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되게 하여야 합니다. 매일 매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면 매일 매일이 최고의 날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과거사와 미래사를 아름답게 꾸미고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높이려는 삶을 사는 분들은 이 소년을 도운 여인처럼 이웃을 사랑합니다. 어떤 때는 분에 넘치게 “Are you Jesus?”라는 말을 듣습니다. 사실 이런 말을 안들어도 상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 날이 우리들의 최고의 날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여인보다 소년이 더 본 받을 만하다고 봅니다. 누가 자기를 도왔다고 “Are you Jesus?”라고 말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소년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년은 늘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삶의 목표가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 날도 주님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이 된 후 깊은 기억 속에 과거에 임하신 예수님의 손길, 또한 미래에 임하실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곤 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곤 했을 것입니다. 자기를 돕는 여인을 보자 “Are you Jesus?”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은 바람결에도 ‘예수님이 오시는가’ 생각을 합니다. 하물며 선을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말하지 않겠습니까? “Are you Jesus?”
교우 여러분,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입니다.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을 맞이 할 때마다 예수님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맞이 하십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십시다. “Are you Jesus? Yes, you are.”
그러므로 과거를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십시다. 미래를 바라보며 놀라운 예수님의 손길을 기대하십시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됩니까? 늘 과거사만 생각하고 미래사만 생각하고 도취해 있으면 됩니까? 오늘이라는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에드워드 페월(Edward Farrell)이라는 천주교 신부가 있습니다. 33년간의 신부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은퇴식에 가까운 친구들을 모두 초대했습니다.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모두 자기에게 귀한 영광을 주신 분들이라고 말하며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다음과 같이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저의 가장 큰 기쁨은 여러분들에게 성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렇게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아멘’이 아니라, 참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시며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네, 나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네, 나는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Yes, I am Jesus. Yes, I am.’”.
그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You are Jesus.” 그리고 친구들은 응답하였을 것입니다. “Yes, I am.” 이들이 이러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은 예수님의 영광에 심취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서 예수의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생애 최고의 날 한가운데 서 있었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Are you Jesus?” “Yes, I am.”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