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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잡으라.” 요한계시록 2: 18-29 (06/19/2022)

“지금 신(신하)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배)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맞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누구의 말인지 많은 분들이 잘 아실줄 압니다. 한국인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말입니다.

이순신의 정적이라고 할수 있는 원균이 이순신을 중상모략하여 강등시키고 감옥에 가둡니다. 그런데 원균은 이순신이 세운 해군부대로 왜적과 싸우다가 300척 중에 12척만 겨우 남기고 참패를 당합니다. 다시 이순신을 자리에 앉힙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답신한 것입니다.

“지금 신(신하)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맞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유명한 명량해전에서 일본군 133척과 싸워 대승을 거둡니다. 이 때가 1597년.

 

그후 약 300년이 지나서 영국의 해군 제독 알렉산더 발라드가 일본을 방문합니다. 이유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해군을 무찌른 것을 분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러일전쟁의 영웅 도고 제독을 만납니다. 그에게 누가 롤모델이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영국의 넬슨 제독이라는 말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 도고 제독의 입에서 나옵니다.

‘이순신 장군.’

도고 제독은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나를 넬슨과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순신에게는 못미친다. 그가 제독이라면 나는 하사관에 불과할 뿐이다.”

이 말을 들은 때는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약10년전입니다. 발라드는 곧 일본의 식민지가 될 작은 나라에서 세계적인 위대한 영웅이 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오늘 유아세례식이 거행되었는데 오늘 유아세례를 받은 자녀들은 물론이거니와 썬플라워 그리고 중고등부 아울러 청년들까지 이순신 장군을 닮은 멋진 믿음의 용사들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저희 자녀들이 믿음의 든든한 용사로 자라날까요? 호된 훈련이 필요할까요?

 

오늘 네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나눕니다. 18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주님은 장군 내지 제독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먼저 눈이 불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배 위에서 불꽃 같은 눈으로 왜적 함대를 노려 보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발은 빛난 주석과 같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석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래는 구리와 주석이 합성된 청동으로 생각합니다. 곧 단단한 군화를 신은 장군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백전백승의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제 길이 열린 것 같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하시는 주님의 말씀 안에 저희 자녀들이 믿음의 용사가 되는 길이 담겨져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왜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이런 장군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 살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만 먼저 말씀드리면, 두아디라 교회가 네 번째 교회인데 두아디라 지역은 그동안 살핀 세 지역에 비해서 제일 별볼 일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지난주 말씀드렸는데 에베소가 미국의 뉴욕이라면 버가모는 워싱톤 디씨라고 비교합니다. 반면 두번째 도시인 서머나는 항구 도시로서 상업이 발달 되었기에 미국의 나성 정도는 된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반면 두아디라는 제가 필라델피아에서 9년을 살아서 잘 아는데 미국의 필라델피아 정도입니다. 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은 열등감이 있었는데 뉴욕을 도전할수 없어서 그곳에 와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마피아도 뉴욕에서 쫓겨서 온 사람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곧 두아디라는 상업 도시이긴 한데 뉴욕 곧 에베소에서 밀려서 온 사람들의 상업 도시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필라델피아처럼….

 

그러면 왜 이런 지역의 교회에게 장군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 더욱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아니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가 숨겨져 있을수 있습니다. 장군이 나오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지역인데 말입니다. 잠시 후 다시 이 점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주님은 장군 모습을 하시고 말씀하십니다. 19절,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아주 큰 칭찬의 말씀을 하십니다. 특히 에베소 교회와는 대조되는 칭찬을 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이처럼 야단치셨습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4)

반면 두아디라 교회에는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여러모로 두아디라는 에베소에 비해서는 초라한 도시인데 도리어 에베소 교회에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인들은 기뻤을 것입니다. 늘 에베소 교회에 열등감을 갖고 지냈을텐데 말입니다. 그동안 자기들이 잘한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래도 꾸준히 신앙생활을 해온 자신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감사한 마음에 잠시 잠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20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네들도 역시 여러모로 부족한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급소를 찌르고 계십니다.

시간 관계상 이세벨에 대해서 자세히 나눌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북왕국의 유명한 왕 아합의 아내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신학생시 다녀 왔는데 유적들을 보면 제일 많이 보이는 두 왕의 이름이 있습니다. 솔로몬과 아합입니다. 그처럼 아합은 세상적으로는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이세벨인데 이는 이방 여인으로 많은 우상을 가지고 들어 온 사악한 여인입니다. 이런 사악한 여인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큰 혼동이 왔을 것입니다. 그 동안 자기들은 시작은 미약했지만 하나 하나 차곡 차곡 쌓아가는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한꺼번에 일약 커지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두아디라는 그런 꿈도 실현될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아합과 이세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세벨을 언급하십니다. 사실 다른 면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이세벨을 거짓 선지자라고 꼬집고 계십니다. 이세벨로 인해서 어느덧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두아디라 교인들은 소름이 끼쳤을 것입니다. 두아디라는 작은 도시로서 상업도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이곳에서 장사하는 자들은 에베소 등 큰 상업도시의 사업하는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어쩔수 없이 조합을 이루어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이 조합의 사업가들이 성공을 위해서 종종 모여서 우상숭배를 한 것입니다. 사업 번창을 위해서…. 한국식으로는 돼지를 잡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우상이 아니다’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이 아니다’ 가르치는 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 이세벨임을….

주님은 경고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이세벨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너희 안에 이세벨이 있고 아니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후예가 자라고 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앞이 깜깜해 집니다. 그 동안 처음 시작은 미약했으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는데…. 잘해 온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어느덧 자기들 안에는 이세벨이 판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대개혁을 원하실까요? 아마 다른 도시의 교회들은 어떻게 하나 알아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주님은 더 이상 야단치시지도 않고 벌을 내리시지도 않습니다.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도 않으십니다. 도리어 이세벨은 몸소 당신이 손 보시겠다고 하십니다. 두아디라 교인들에게는 다른 짐은 주시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4절,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아마도 약한 교회로서 에베소 교회와는 달리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았던 그 사실로만 만족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만을 명령하십니다. 25절,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두아디라 교인들은 몸둘바를 몰랐을줄 압니다. 주님께서는 무리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어려운 것은 당신께서 손수 해결하십니다. 단지 두아디라 교인들이 잘 하고 있는 것을 계속 잘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자기들이 꾸준히 해 온 것을 주님은 소중히 여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두아디라 교회의 DNA였습니다. 그들은 작은 도시 작은 교회 작은 성도였지만 처음보다 발전하는 놀라운 DNA를 소유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새로운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다른 교회에 눈을 돌려 자기들에게 없는 것을 새롭게 배우게 하시지도 않으십니다. 다른 교회와 비교하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단지 손에 익숙한 것, 잘 했던 것을 놓지 않고 굳게 잡고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주신 DNA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주님이 해결하십니다. 이세벨도 처리해 주십니다. 그동안 자기들 안에 있던 것이 소중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 때 놀라운 말씀이 들립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자기 안에 있던 것의 소중함을 보는 자들이 승리자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27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들을 이순신 장군 저리가는 위대한 장군이 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8절,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물론 새벽 별의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느 주석가는 정복자를 뜻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곧 정복자에게 주는 영예가 바로 새벽별인 것입니다.

 

이들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세벨의 꾀임에 넘어갔고 또 이세벨 조차도 자기 힘으로 해결할수 없는 자기들을 도리어 위대한 장군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새벽 별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한 조건은 하나입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주님은 크고 능력 많은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작고 연약한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을 다스릴 장군들을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작게 생각하고 있지만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들이 소중함을 믿고 천천히 기초를 쌓아가는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너희는 최고의 십자가의 군대이다.”

 

오늘 네 명의 어린이들이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네 가정을 보시면서 주님께서 생각하시지 않으실까요?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 보다 많도다.”

 

여러분들에게 없는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 신앙 생활 할 때 잘 했던 것, 그것을 계속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믿음의 장군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세벨은 주님께서 벌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한번 다윗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면, 골리앗 장군 앞에서 온 이스라엘이 떨고 있을 때 다윗이 나타납니다. 사울왕에게 말합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이에 사울왕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자 도리어 다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골리앗에게 나아갑니다.

 

다윗은 어릴 때 익혔던 자기의 특기를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아갔고 골리앗을 무찌른 것입니다. 다윗은 장군 중의 장군이 이미 된 것입니다. 어릴 때 주어진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익숙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나라를 구한 것입니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장군 중에 장군이 나타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세상은 나에게 없는 것을 빨리 빨리 채워가는 자들이 승리자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에 충실한 자들을 승리자로 장군으로 부르십니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소중함을 보았던 위대한 장군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주어진 것들이 작아 보일지라도, 굳게 붙잡읍시다. 믿음의 장군들이 되어 가십시다.

 

믿음의 밧줄을 붙들고 있는 보스톤 한인 교회 교우들을 향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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