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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편 1:1-6 (07/31/2022)

‘하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몸에 20센티가 넘는 점이 여기저기 생기는 병입니다. 아주 희귀병인데 악성 종양이 될수가 있어서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만 합니다. 두 돌이 지나면서 피부 이식 수술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여덟차례의 큰 수술을 잘 견뎠습니다.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수술 자국을 보며 징그럽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하음이는 차분하게 친구들에게 수술을 받은 자국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팠는지 어느날 잠자리에서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나는 왜 점을 갖고 태어났을까? 하나님은 왜 나에게 점을 주셨을까?”

시간이 흘러 하음이가 초등학교에 들어 갔습니다. 입학 후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며 신나게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왜 하나님이 점을 주셨는지 알게 됐어! 인기 있게 해 주시려고 주신 거였어.”

소매를 걷은 하음이에게 친구들이 하나 둘 와서 물어 보았고 이에 하음이는 즐겁게 아는 지식을 다 동원해서 잘 설명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수치심 보다는 도리어 자기가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실줄 압니다. 이지선 교수라고 교통사고로 몸의 절반 가량 화상을 입어 장애인이 되신 분입니다. 이제는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교수로서 사회 봉사자로서 열심히 사시는 분입니다.

하음이는 바로 이지선 교수의 조카입니다. 이지선 교수는 화상으로 피부 이식 수술을 많이 받았고 하음이는 선천성 피부 점으로 인해서 피부 이식 수술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지선 교수는 본인의 책에서 조카 하음이의 이야기를 소개해 주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음이는 흉터를 가리거나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를 통해 친구와 더 많이 얘기 나누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방식으로 사용할 줄 안다. 상처 따위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겠다며 의미 없는 한탄을 하지 않고 상처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어떻게 하음이는 어린 나이에 이런 지혜를 갖게되었을까요? 어떻게 하음이는 상처에서 꽃을 피게 하는 주인공이 될수 있었을까요? 참고로 ‘하음’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음이가 누리는 축복을 찾아 보았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 시편 1편의 주제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1절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지난 두달 가량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 씨리즈로 말씀을 전해 드렸고 바로 그 전에는 주님의 산상수훈의 말씀 특히 팔복의 말씀을 나눴었습니다. 그 때 말씀드렸습니다. 산상수훈의 첫 말씀은 원어성경으로는 ‘makarioi’ ‘복되도다’로 시작한다고…. 어느 주석가는 시편의 시작과 산상수훈의 시작은 동일한 주제라고 비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곧 산상수훈도 시편도 ‘복’으로 시작합니다.

산상수훈에서는 팔복으로 복 있는 자를 나눴는데 그러면 시인은 복있는 자를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합니다. 복있는 자는 특별히 의로운 행위를 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지 않습니다. 1절 말씀에 봐도,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수동적입니다. 그냥 악한 일에 동참하지 말라는 말씀이지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2절 말씀에는 적극적으로 하는 행위가 나오는데 남들 보지 않는데서 혼자서 몰래 할수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즐거워하고 묵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 행위인 것입니다.

 

율법을 원어로 토라(Torha)라고 합니다. 그런데 ‘토라’는 ‘javelin’에서 유래되었습니다. Javelin의 뜻은 ‘무엇을 던지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국에서 javelin무기를 우크라이나에게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이 javelin때문에 러시아 탱크가 많이 피해를 입어서 전쟁이 속전속결이 되지 않았던 것을 잘 아실줄 압니다. Javelin이 쏜 것을 타겟인 러시아 탱크가 맞고는 파괴되곤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토라는 던지는 것이고 그것의 타겟은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곧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율법의 타겟이 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타겟이 될 때 ‘하음’ 곧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묵상’이라는 단어가 잘 설명해 줍니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의 묵상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차분히 명상에 잠기는 정도가 아닙니다. 원어로는 이 단어는 사자가 먹이를 잡아 먹을 때 그르렁거리면서 쾌감을 갖고 먹이를 삼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복있는 자들의 특징은 말씀에 자신을 타겟으로 드러내 놓는 것이고 말씀이 마음에 꽂혔을 때 사자들이 먹이를 즐기듯이 황홀한 가운데 소리를 내면서 자기의 것으로 삼키는 행위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당연히 즐거움의 소리를 내게 됩니다. 즐거움의 소리로 그칠리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먹고 섭취하는 자들은 저절로 멋진 행위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특별한 의로운 행위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 빠지다 보면 의로운 행위가 뒤 쫓아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들은 어떤 축복을 받나요?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에는 항상 이미지가 나오는데 오늘 시편 기자는 두 가지 이미지를 비교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또 하나는 4절에 나오는 ‘바람에 나는 겨’.

 

말씀에 타겟이 되고 말씀으로 한방 맞을 때마다 그르렁 거리며 말씀을 되씹고 또 되씹어 피와 살이 되게 하는 자들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서 많은 열매를 맺고 만사 형통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말씀의 타겟이 되고 말씀을 늘 묵상하는 자들은 자기가 있는 곳을 시냇가로 만드는 것입니다. 광야일찌라도 시냇가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절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매일 매일 일어나는 축복입니다. 기적입니다. 반복되는 기적이라고 할까요. 기적이 생활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적이 더 이상 기적이 아닙니다. 삶의 구석 구석에서 늘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바로 처음 소개한 하음이가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상처를 꽃이 되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말씀을 받고 묵상하지 않을 때는 4절,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요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말씀에 타겟이 될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됩니다. 타겟이 되는 것을 포기할 때 바람에 나는 겨가 됩니다.

하음이도 둘 중 하나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시냇가의 나무 아니면 바람에 나는 겨…. 하음이는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었기에 자기가 서 있는 광야를 시냇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놀라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모든 일에 형통만 할까요? 어느 젊은 목회자가 아버지의 수건을 썼는데 순간 아버지가 무좀으로 고생하는 것을 깜빡 잊고 아버지의 수건을 썼다고 합니다. 자기도 무좀에 걸릴까 봐 걱정이 되어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 무좀은 나이가 많아지면 저절로 없어질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이유는 무좀균도 나이 든 영양 없는 몸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무좀 균이 있다는 것은 건강한 몸을 증명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도리어 무좀이 생길수가 있습니다. 살아 있기에…. 한편 바람에 나는 겨에는 무좀이 생기지 않습니다. 죽어 있기에…. 앞으로 나눌 시편의 이야기는 이런 인생드라마일줄 압니다.

 

제가 ‘앞으로 나눌 시편의 이야기’라는 표현을 했는데 앞으로 당분간 시편 씨리즈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시편 씨리즈를 계획하게된 이유가 있습니다. 일곱 교회 특히 라오디게아 교회가 많은 도전을 주었습니다.

 

지난주 어느 성경공부반을 들어 갔는데 농담을 즐겨하시는 어느 교우님이 라오디게아 커피가 있다고 마시라고 권하셨습니다. 순간 라오디게아에서 온 커피인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금방 든 생각은 미지근한 커피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이미 한 잔을 해서 사양하고 방을 웃으며 나왔습니다.

 

지난번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미지근하기에 책망을 받았지만 라오디게아 교회의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머지 여섯 교회는 최소한 한 가지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반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하나도 없이 미지근하다는 책망만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고의 축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정말로 믿기 어려운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보좌에 앉게 하는 축복을….

 

곧 시편도 ‘복’을 주제로 시작합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 ‘복’을 선포하십니다. 아울러 요한을 통하여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최고의 축복 ‘주님의 보좌’에 앉는 축복을 선포하십니다.

시편과 산상수훈 모두 복을 선포합니다. 약속합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완성하십니다. 주님의 보좌에 앉는 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의 보좌에 앉아 있는 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시편에 잘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곱 교회 씨리즈를 마치게 되면 시편의 말씀을 나눌 계획을 이미 하였습니다. 총 150편 중에 몇 편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미지근한 교인들에게도 주시는,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없는 자들에게 주시는 ‘보좌에 앉은 축복’을 함께 누리고자 합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광야와 같은 세상을 도리어 주님을 의지하며 시냇가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아울러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맛보며 생명나무의 열매를 맛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계 22:1, 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 귀한 축복의 첫 걸음은 말씀에 타겟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타겟이 되십시다. 광야는 매일 시냇물로 가득차고 넘칠 것입니다. 사시사철을 넘어 매달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요즘 무척 가뭅니다. 매일 비 않오나 기대하며 일기예보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모스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모스 8:11,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조금 의역하면 말씀을 듣고 그르렁거리지 못한 기갈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의 타겟이 되어 묵상중에 그르렁 소리를 낼 때 어느덧 우리가 있는 곳은 시냇물이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가뭄 가운데서 샘이 터지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이런 경험을 한 믿음의 선조들의 시냇물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함께 시편을 묵상하며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뭄 중에도 시냇물 소리가 가득차게 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다윗이야말로 말씀에 타겟이 되었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특히 시편 119편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말씀을 얼마나 즐겼으면 176절의 기가막힌 시를 지을수 있었는지 감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원어로 보면 매 문단이 8절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 알파벳 숫자가 22개인데 매 문단의 첫절은 같은 알파벳으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첫 여덟절은 a로 시작하고 두번째 문단은 b로 시작하고 …, 그래서 8×22=176이 된 것입니다.

한글 번역판에는 보이지 않는 것 뿐입니다. 저희 교회 청년들을 생각하며 두번째 패러그래프 곧 b로 시작한 말씀을 봉독해 드립니다. 시 119: 9-16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은 주님의 말씀의 타겟이 되어서 10년간 사울에 쫓겨 다녔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형통함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도리어 시냇가의 심은 나무가 된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보좌에 주님과 함께 앉은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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