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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기둥” 요한계시록 3: 7-13 (07/10/2022)

다음은 미국 장로교에서 오래 전 한국으로 파송된 한 선교사님의 말입니다.

“뉴욕에서 백만장자로 사는 것보다 한국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사로 사는 것이 더 멋진 삶이 아닌가!”

잘 아시는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말입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자기와 함께 사업을 하자는 형의 편지를 읽고 터져나온 첫 일성이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원래 영국 런던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 1.5세입니다. 오늘 중고등부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자녀들도 1.5세가 꽤 있을줄로 압니다. 뉴욕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졸업 대표 연설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영광스러운 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는 언더우드에게 큰 실망을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놀라운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도리어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소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곧바로 뉴브룬스위크 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졸업 후 인도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의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이 때 한국 선교의 문이 열렸으나 갈 자가 없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순간 언더우드는 “왜 나는 한국에 가지 않는가?”라는 도전에 직면합니다. 드디어 한국 선교에 뜻을 품고 1885년 4월5일 제물포 항에 도착합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선교합니다. 그를 보고 한국인들은 두 가지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넓은 날개’(wide wings), ‘불동아리’(a bundle of fire). ‘넓은 날개’는 그는 훨훨 날아다니면서 여러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다 감당하기에 지어진 별명입니다. 지금 열거해 드릴 시간은 없는데 제가 세어 보았는데 거의 20가지 사역을 하셨습니다. ‘불동아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며 불타는 인생을 살았고 결과적으로 한국 교회를 타오르게 한 ‘불동아리’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선교를 하고 있는데 형에게 편지가 온 것입니다. 선교를 시작한지 13년이 되었을 즈음이었습니다. 형이 인쇄업을 하였는데 그의 사업이 세계 제일의 회사로 발돋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와서 도와달라는 편지였습니다. 그는 편지를 찢으며 말한 것입니다.

“뉴욕에서 백만장자로 사는 것보다 한국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사로 사는 것이 더 멋진 삶이 아닌가!”

 

무엇이 언더우드로 하여금 형의 요청을 뿌리치고 끝까지 어려운 선교 사역을 계속하게 하였을까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찾아 볼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섯번째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교회 곧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나눕니다.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그동안 다섯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보면 주님은 당신의 모습을 그때 그때마다 다르게 소개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모습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열쇠는 한번 열거나 닫으면 그 누구도 더 이상 열수도 닫을수도 없는 열쇠입니다. 이 열쇠를 들고 계신 주님을 보면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당연히 ‘우리를 위해 무엇을 열어주시려나’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8절 상반절,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깜짝 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미 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문이 열려 있으니 아무도 닫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려는 자들에게는 열린 문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려는 자들이 볼수 있는 바로 그 열린 문은 어떤 문일까요?

 

주석가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지도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장 내륙에 가까이 있습니다. 곧 빌라델비아를 통해서 소아시아 지역으로 복음의 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곧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소아시아를 통해서 전 아시아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는 특권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서 주님은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은 그 누구도 닫거나 열수 없습니다. 오직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만이….

저도 오래전 안식년 때 터키를 가 보았지만 무척 지형이 험합니다. 특히 빌라델비아에서 동쪽으로는 정말로 험한 지역이 계속됩니다. 그 누구도 이 지역을 향해서 복음의 문이 열려져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곳입니다.

 

이처럼 ‘열린 문’이 전도의 문임을 확신하고 어느 선교단체는 이름을 ‘열린 문’ ‘Opendoors’선교회로 지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이름을 ‘열린 문’ 교회로 지었는데, 글쎄 교회 문이 열렸으니 많이 오라는 의미로 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은 ‘열린 문’은 교회 이름 보다는 선교단체 이름이 더 적합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여튼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소아시아 동쪽으로 열린 문을 상상하면서 좀 암담해 했을 것입니다. ‘저렇게 험한 곳으로 어떻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인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8절 하반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이야기와 깊게 연관이 있다고…. 이 말씀은 누가 연상이 되겠습니까? 지금 주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들고 계시다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이 말씀과 다윗이 깊게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이야기 잘 아실줄 압니다. 다윗은 온갓 pressure를 그 작은 몸으로 다 받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실패하면 이스라엘민족은 블레셋의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아무도 자기가 골리앗을 무찌를 것이라고는 믿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믿었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외치며 골리앗 장군을 향해 달려 나간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였고 이스라엘 왕국의 기초를 닦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 간 것입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도 같은 축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작은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처럼 지금 열린 문으로 들어가 다윗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곧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곧 다윗처럼 넓게 펼쳐진 소아시아 땅으로 골리앗을 무찌르듯이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열린 문으로 들어 간 후에도 계속해서 어려운 일이 펼쳐질 것도 9, 10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힘을 주십니다.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제가 언더우드 선교사가 왜 형님의 편지를 찢었을까 이유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찾아 볼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마도 언더우드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언더우드는 자기 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는 저드신(Judson)이나 다른 개척 선교사들이 어떻게 수년간이나 수십 년간 단 한 명의 개종자 없이 일했는지 보았다. 우리는 중국에서 선교사들이 아무런 열매를 보지 못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꾸준히 일했는지 보았다. 우리는 심지어 일본에서도 첫 개종자의 세례까지 10년을 기다렸고, 6명의 교인으로 첫 교회를 조직할 때까지 12년을 기다린 것을 보았다.”

 

이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언더우드는 ‘넓은 날개’와 ‘불동아리’가 되어 훌륭하게 선교를 감당합니다. 곧 언더우드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다윗의 믿음을 가지고 열린 문을 통과해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면류관만 받게 될까요? 12절 상반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다윗은 성전의 문지기가 되길 원했는데 문지기 정도가 아닙니다.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를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빌라델비아 지역은 지진이 자주 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소원은 안전한 곳으로 가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늘 움직이는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지진이 나도 흔들리지 않는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12하반절,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고대시대에는 기둥 위에 유명인들의 이름을 적어 놓고 기념을 하곤 했습니다. 곧 이들의 성전의 기둥에 세 가지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성의 이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성전의 기둥이 된 것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세 이름이 그 기둥에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열려져 있습니다. 남은 것은 열린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선교하는 사람들은 성전의 기둥 곧 하나님의 역사의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둥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 그리고 하나님의 성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언더우드의 기둥에 이 놀라운 세 이름도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언더우드 뿐이 아닙니다. 지난 주일에 일곱 교회 안에 앞으로 오고 가는 모든 교회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곧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서는 모든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자신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교회는 열린 문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님께서는 모든 교회를 위하여 축복의 열린 문을 주신 것입니다. 아니 주님은 모든 교회가 들어 가도록 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는 아무도 닫을수가 없는 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열린 문을 보지 못하고 봐도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까? 열린 문 넘어 보이는 것은 마치 험한 소아시아로 복음을 전파하러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윗의 믿음입니다. 골리앗으로 달려나가는 소년 다윗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다윗의 열쇠로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십시다. 면류관을 받고 성전 기둥이 되어 가십시다.

우리들 앞에 있는 열린 문으로 들어가 넓은 날개와 불동아리가 되십시다. 21세기 빌라델비아 교회가 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제가 매일 아침 콤퓨터를 키면 들어가는 몇 싸이트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선교싸이트인데 그 싸이트에 들어가기 시작한 계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 저희 중고등부 학생들이 프랑스 단기선교를 다녀 왔는데 그 때부터 그 싸이트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프랑스의 영적 부흥을 위해서….

오늘은 특별히 중고등부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열린 문을 들어가는 축복을 모두 받게 되도록….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어 갈 것입니다. 21세기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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