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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좌에 함께…” 요한계시록 3:14-22 (07/17/2022)

유진 피터슨 목사님께서 목회하실 당시 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화창한 주일이었습니다. 교회문에서 오랫 동안 보지 못한 한 교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아주 열심인 교인이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뵙게 되어서 너무 좋네요. 오늘 특별히 무슨 일이라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서 여느 때와 다르게 뭔가 신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목사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도 잘 되고요 자녀들도 아주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최고의 하루입니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분임을 느꼈습니다.”

그 교인은 그 날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후 수년간 또다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교인이 되길 원하십니까? 세상적으로 잘 되어서 결국은 신앙을 잃게 되는…. 한편 주님께서는 이런 교인들이 계속 생겨날줄 아셨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이런 교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까요? 오늘 일곱 교회 중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나눕니다. 3:14절 말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매번 교회들에게 말씀하실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시곤 하셨는데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눈에 그릴수 없는 추상적 모습으로 당신을 소개하십니다.

 

오늘 마지막 일곱 교회를 향한 말씀을 나누고 있으니 그동안 매 교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실 설교도 반복이 중요해서 가급적 반복을 하고 싶었는데 워낙 매 교회마다 풀이해 드려야 하는 내용이 많아서 교회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씀드리지 못했었습니다. 오늘이라도 한번 반복해 드리면, 먼저 첫 교회 에베소 교회에는, 2:1,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두번째 서머나 교회는 2:8,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세번째 버가모 교회는, 2:12,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번째 두아디라 교회는, 2:18,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다섯번째 사데 교회는, 3:1,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여섯번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3:7,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지난주에 나눴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손에 들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다윗의 열쇠로 선교의 문을 여셨고 이에 다윗의 믿음으로 광활한 세상을 향하여 골리앗을 무찌르듯이 달려 나갈 것을 온 교회에 원하신다고 지난주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14절,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말씀드린대로 추상적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멘이시요’로 주님은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왜 ‘아멘’으로 시작하셨을까요?

저희가 기도를 ‘아멘’으로 마치죠. 이유는 드린 기도가 진실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아멘’의 뜻은 ‘진실로’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아멘’으로 소개하십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말라기 곧 구약의 말씀뿐 아니라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신약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주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구약에는 성경 곳곳에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그 예언이 모두 주님 안에서 ‘아멘,’ 진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최소 61개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주님으로 인해 ‘아멘’ 되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61개의 예언이 한 사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연구했는데 그는 61개가 아니라 8개의 예언이 이루어질 확률도 1/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은으로 된 동전 개를 미국 텍사스 주에 깐다고 생각해 보라. 이는 약 60센티미터 두께로 쌓아서 텍사스 주 전체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이제 그 동전 중에 하나를 골라 표시를 하고, 무작위로 한 사람을 골라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그 표시된 동전을 찾아오라고 했다고 치자. 그가 그 동전을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 이것이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기록한 예언 중 8개가 긴 역사 가운데 딱 한 사람에게서 모두 들어맞을 확률과 똑같다.”

그런데 이것도 8개의 예언을 두고 한 말입니다. 61개의 예언으로 계산한다면 1/이라고 합니다.

 

곧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 분이 ‘아멘’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기적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계신 곳에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처럼 ‘아멘’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신 것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대단한 교회 최고로 주님의 칭찬을 받은 교회일 것 같습니다. 15, 16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의외입니다. 도리어 책망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수치스러운 책망입니다. 미지근하다는 책망을 하십니다.

주석가들은 라오디게아 도시 주변에 온천으로 생긴 강이 있는데 이 강이 라오디게아 주변에 와서는 미지근한 물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이처럼 미지근한 물이 되었다고 말씀하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제 신학교 동기를 만났었는데 터키에서 30년간 선교사로 수고하고 있는 분인데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도시 주변으로 두 가지 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뜨거운 물로 시작된 강 또 한 강은 반대로 찬 물로 시작된 강, 그런데 이 두 강이 라오디게아 가까이 와서는 모두 미지근한 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고 책망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사실 주님은 이 말씀도 라오디게아 상황을 빗대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곱 도시 중에 요즘 사람들이 제일 살기 좋아하는 도시를 꼽는다면 아마 라오디게아일줄 압니다. 라오디게아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번째가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곧 은행가가 있는 곳입니다. Wall Street이 있는 곳입니다. 두번째로는 옷을 잘 입고 다녔습니다. 의류 업계 내지 패숀계가 발달 된 곳이었습니다. 세번째로는 의학이 발전된 곳이었습니다. 특별히 안약의 본산지였습니다. 곧 돈과 패숀과 의학이 발달된 곳입니다.

늘 미국에서 제일 살고 싶은 곳이라는 통계가 나오곤 하는데 글쎄 보스톤은 몇번째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라오디게아는 돈과 패숀과 의학으로는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주님 보시기에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미지근해지는 이유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살기 좋아하는 도시에 살기에 도리어 신앙적으로는 미지근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미지근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소개해 드린 그런 교인들이 계속 늘어 가고 있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꾸짖습니다. 18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한 마디로 주님이 은행이 되시고 패숀 디자이너가 되시고 의사가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최고의 은행주이시고 패숀 디자이너이시고 의사이십니다. 이유는 이미 주님께서 당신을 소개하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주님은 창조의 근본이십니다.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부요케 하시고 옷을 입히시고 고쳐 주시니 최고의 모습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부가 줄줄 흐르고 화려하고 신비한 무늬의 옷을 입고 하나도 손색 없는 완벽한 건강미가 줄줄 흐르는 모습이 될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축복을 받죠? 19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회개한다는 것은 돌이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180도 돌리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Wall Street을 찾아 다녔고 온갖 유행에 마음을 쏟았고 건강을 위해 세상 의학에 매어달렸지만 이제는 거기서 돌이키고 ‘아멘’이시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요 창조의 근본이신 분에게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방법도 말씀해 주십니다.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 문을 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께 문을 여는 것입니다. 1/의 확률도 이루시는 분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도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듣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마음이 Wall Street로 가 있었습니다. 최고의 회사들로 가 있었습니다. 최고의 대학 병원으로만 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나오는 소리에 늘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워 갔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두드리시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세상으로 향했던 귀를 주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두드리시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께서 들어 오셔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축제가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미지근한 물이 차거나 따끈따끈한 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서 따끈하고 때로는 시원한 물을 마시는 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격 의학’이라고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폴 투니에라는 스위스 의사가 있습니다. 많은 좋은 책을 써서 영성계에도 크게 기여한 분이십니다. 그가 그렇게 의사로서 영성가로서 크게 사회에 공헌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제네바 성베드로 대성당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투르니에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돌아가시고, 유방암을 앓던 어머니는 투르니에가 겨우 여섯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삼촌과 이모 밑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훗날 투르니에는 ‘어린 시절 교회 활동에 착실히 참여했지만, 고통스럽게 공허했고, 남에게 하찮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라고 회고합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 사람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시절의 쥘 뒤부아 선생입니다. 그는 눌리고 닫혀있던 투르니에를 자기 집에 꾸준히 초대하여 대화에 참여시켰습니다. 인격적 만남의 중요성에 눈뜨면서 차츰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폐 성향을 극복하여 적극적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선생님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서 그는 위대한 영성가로서 사회에 기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삶에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스승을 잘 만나서 한 평생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뻔하였는데 도리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훌륭한 의사가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을 잘 만났기 때문에….

하물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어떤 위대한 일이 벌어질까요?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것이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온 세상에 열려 있습니다. 일곱 교회에 열려 있습니다. 특히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처음 소개한 세상 축복에 빠져서 back sliding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1절,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처음에는 당신의 식탁에 초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하시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보좌에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저희가 사는 동네에 아주 파티를 자주하는 집이 있습니다. 파티를 자주하는 것을 쉽게 알수 있는데 그것은 그 집에서 부터 시작해서 온 동네에 차가 가득찹니다. 그러면 또 파티가 시작되었구나 알게 됩니다.

어떤 때는 그 다음날 아침까지 차가 여러대 주차되어 있음을 보기도 합니다. 아마 먼데서 오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 떠납니다. 잔치에 참여하였지만 언제가는 떠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축제에 초대한 사람을 그대로 돌려 보내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축복을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서 선포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교회라구요? 처음 소개한 세상 축복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아닙니까?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의 여섯 교회는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칭찬을 받지 못한 교회는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뿐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최고의 상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히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루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아멘’ ‘진실로’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이신 주님은 그 어느 교회에게도 하나님 보좌에 함께 앉는 축복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여기서 이기는 자는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말씀은 이루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아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 뭐가 대단하기에 ‘이기는 자’라고 하시는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는 대단한 행위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실은 확률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확률을 믿고 부요해진 사람들입니다. 은행에 투자하고 회사에 투자하고 의학에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70-80%의 확률을 계산하면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어느덧 미지근한 삶이 된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잘 되었어도….

 

그런데 주님은 늘 불가능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확률적으로는 계산이 안 됩니다. 1/의 확률을 믿으라고 합니다. 점점 듣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이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최고의 축복을 내리십니다. 이 축복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서 모든 교회에 주시는 축복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을 듣고 문을 여는 자들은 승리자들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자들입니다. 아멘의 주인공들이 되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오늘로서 여덟차례에 걸친 요한 계시록 일곱 교회 씨리즈를 마칩니다. 씨리즈 첫 설교시 요한계시록은 여러 편의 영화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마쳤습니다.

 

“주님께서 각 교회의 주인이시고 주님의 손에는 각 교회를 지키는 사자가 들려져 있습니다. 그 교회 중 하나가 바로 저희 보스톤 한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요한의 편지는 저희 교회에게 보내어진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열어 봅시다. 그리고 읽음을 넘어 영화처럼 보십시다. … 온 교회 사이에 온 교회의 사자를 오른 손에 드시고 서 계신 주님을 바라 보십시다. 이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외치십시다.

“주여 주는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1/의 확률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을 때 세상 모든 교회는 부흥케 될 것입니다. 주님은 불가능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주님은 ‘아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은 세상 모든 교회가 부흥케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무 칭찬거리도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문 두드리시는 주님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여는 자들이 이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수년 내에 부흥이 일어납니다.

 

‘아멘’이신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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