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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노래” 누가복음 18:1-8 (05/14/2023)

유대문학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자 지간이 모두 랍비였던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랍비가 그 마을의 정식 랍비가 되었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먼 도시에 가서 작은 가게를 차리고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같이 지내는 것보다 멀리서 위하여 기도하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도시가 멀어서 아들 랍비는 일년에 한번씩만 어머니를 찾아가서 뵙곤했습니다.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새 옷을 만들어 입고 가곤하였습니다. 어머니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방법이었습니다. 어머니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새 옷을 입고 간 것입니다.

 

오늘 어머니 주일을 맞이하여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새 카네이숀을 달고 어머니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안고 예배를 드립니다. 한편 말씀드린 랍비의 이야기는 우리들 마음에 작은 도전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매년 새 옷을 입고 어머니에게 공경을 표하는 모습 말입니다.

 

그러면 랍비는 어떤 마음으로 매년 새 옷을 입고 어머니를 뵈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엿볼수 있다고 봅니다. 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비유의 두 가지 특징을 다시 말씀드리면, 주제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이고 청중을 늘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이 비유의 청중이 누구일까요? ‘그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좀 막연합니다. 전 부분 곧 전장인 17장의 말씀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먼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 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당시는 세상 종말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였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애매한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종말에 대한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종말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청중들은 바짝 긴장하였을 줄 압니다. 저도 요즘도 종말에 대한 성경 말씀을 읽으면 늘 긴장합니다. 당연히 제자들을 비롯해서 청중은 긴장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짝 긴장 가운데 있는 청중에게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제로 한 비유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곧 너무 종말에 대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면서 쓸데 없이 시간을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 긴장감을 사용해서 기도에 전념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종말을 사는 자들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2절,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청중은 소름이 끼쳤을줄 압니다. 이 당시 가장 살고 싶은 도시는 의로운 재판장이 있는 도시였을줄 압니다. 당연히 살고 싶지 않은 도시는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 재판장으로 있는 도시일테고요.

 

이처럼 이 당시 상황을 잘 아시는 주님은 나쁜 재판장이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3절,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청중은 깊은 한숨을 내 쉽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 눈에 과부가 들어 올리가 없습니다. 지혜로운 과부라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4절 상반절,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과부는 미련합니다. 도저히 통하지 않는 재판장을 찾아 가고 또 찾아 갑니다. 당연히 재판장이 들을리가 없습니다. 주석가는 한 가지 예를 듭니다. 이 당시 과부가 되면 법적으로는 남편이 남긴 재산을 이어받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는 그렇지만 많은 경우 남들에게 빼았기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호소할 곳은 재판장에게 가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한다면 이 당시 과부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데 얼마나 무시했겠습니까? 청중은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주위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4절b, 5절,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데 깜짝 놀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있을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재판관이 과부의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너무 번거롭게 하니….

청중은 생각합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주변에서는 이런 과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쉽게 포기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곤 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특별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청중은 생각해 봅니다. 이 여인이 다른 여인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아마 쉽게 찾아 냈을 것입니다. 이 과부는 인정합니다. 이 도시의 재판장은 바로 당신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해도 최종적으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은 바로 그 재판장 한 사람이라는 것을….

도저히 인간적으로는 아무것도 기대할수 없는 사람이지만 재판장이기에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당신이 유일한 사람이라고….

과부의 울음은 노래가 되어서 늘 재판장의 귀에 들렸던 것입니다.

“당신이 유일한 사람입니다.”

 

요즘 김겸섭 목사님의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책에서 조지 프레드릭 와츠의 ‘희망’이라는 작품에 대한 글을 접해 보았습니다.

희망, 조지 프레드릭 와츠 : 네이버 블로그

둥근 지구 위에 한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수금을 들고 연주하는데 소녀는 맨발입니다. 소녀의 눈은 흰 천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손에 잡고 있는 악기 곧 수금의 현은 다 끊어지고 오직 한 현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해석합니다.

“아, 이런 상태에서 연주가 가능하겠는가?”

 

김 목사님은 제목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곧 김 목사님도 생각을 바꿉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희망이어야 한다고…. 이유는, 끊어진 현의 악기에도 불구하고 이 소녀가 여전히 악기를 손에서 내려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소녀는 지금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

 

그러나 사실 재판장의 귀에는 한 현으로 들리는 노랫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 노랫소리가 매일 아침 들려 올 때 재판장은 과부의 말을 들을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종말의 두려움 가운데 있는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에게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는 재판장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6, 7절 말씀,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당신이 유일한 분입니다.”라는 노래를 듣고 악한 재판장이 움직였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도 움직이시지 않으시겠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청중은 이해가 됩니다. 힘이 납니다. 지금 돌아 가는 상황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 같지 않은데 또한 종말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려움 가운데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이기는 길은 높은데 있지 않습니다.

가장 천해 보이는 과부의 모습에 있습니다. 높은 지식과 권력을 가진 자를 본받으라면 할수는 없는데 과부의 모습에 천국을 소유하는 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하니 힘이 납니다. 앞으로 올 종말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부의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당신이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렇게 신나 하는데 주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8절a,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주님은 확신의 도장을 찍어주십니다. 이제 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만 붙들면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리고는 8절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을 듣고 청중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과부의 믿음을 가진 자를 발견할수 없다는 말씀인가…? 과부의 노래를 부르는 자를 찾을수 없다는 말씀인가…?’

 

교우 여러분,

과연 과부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 없을까요?

 

25명의 작가 내지 예술인들이 함께 ‘어머니의 노래’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들은 어머니를 위해 옷을 해 입은 대신에 글을 쓴 것입니다. 대표적인 분이 잘 아시는 이해인 수녀입니다.

이 시간 잘 알려지지 않은 김현진 작가의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김현진 작가의 아버지는 작은 교회 목회자이십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평생 고생을 하셨고 김 작가도 자신의 학비를 스스로 벌면서 힘겹게 학교를 마쳤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시나리오과를 졸업했습니다.

 

아버지는 목회가 잘 안 되니 때로는 어머니를 책망하기도 하고 무엇 보다도 딸인 자신에게 많은 불만을 표했다고 합니다. 다른 교회는 목회자의 자녀가 열심히 교회를 섬겨 교회가 부흥한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글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엄마의 노래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크게 노래하지 않았다. 예배당에서도, 우리가 지낸 창문 없는 지하 창고방에서도, 애써 기울이지 않으면 나지막한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괴로운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안식 주리라….”

평생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주님이 정말 있고 그분이 얼굴을 가지고 계시다면 부디 그 얼굴을 한 번 뵙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꼭 한 번 말하고 싶었다.

“주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 나라에서 다들 복 달라고 해서 참 시끄러우시죠? 저도 복 주십사 그러는 건 아니구요, 그냥 주님 귀찮게 안 하도록 열심히 살게요. 인제 와서 갑자기 교회 부흥도 하게 해 주시고 헌금도 판판 들어오게 해주시고, 저희 엄마 잘 먹고 잘 살고 호강하게 해달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구요, 에이 염치가 있죠. 그거는 형편 닿는 대로 제가 할게요. 어렵긴 하지만 뭐 주님은 인류를 위해 돌아가셨는데 거기에 비하면야. 제가 묻고 싶은 건, 주님 저희 엄마 아시죠. 그 사람이 말이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답니다. 아세요……? 뭐 대단히 잘하는 노래는 아니지만, 엄청 오래 불러서 말이죠. 그냥 그 노래가 들리셨는지 해서요. 그저…… 당신께서 그걸 들으셨는지 해서요. 그냥 저는, 그게 참 오랫동안 긍금했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주님.”

 

김현진 작가는 어머니가 과부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모습 안에 과부의 모습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노래가 과부의 노래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모습 안에 와츠의 ‘희망’을 노래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바로 모든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김현진 작가의 어머니는 기도 응답도 없고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늘 이런 노래를 하나님께 올린 것입니다.

“당신이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처음 소개해 드린 랍비는 일년에 한번 새 옷을 해 입고 어머니를 뵈러 가곤 했습니다. 일년 동안 과부로서 모든 어려운 여건도 굳건히 이기고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노래를 올렸던 어머니의 모습을 공경하기 위하여….

그리고 김현진 작가는 은연 중에 당신의 어머니는 하나님은 비록 귀머거리가 되신듯 전혀 답을 하시지 않으시는 것 같아도 언젠가 어머니의 기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확신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닐까요?

 

오늘 어머니 주일로 지킵니다. 위태로운 둥근 지구 위에서 평생 한 줄만 남은 수금을 들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새롭게 위대한 인류의 미래를 꿈꾸십시다. 어머니의 노래를 함께 부르십시다.

“당신이 유일한 분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요즘 늘 어머니를 위해 정장을 입고 사시는 분이 계십니다. 언젠가 소개해드렸던 이지선 교수님입니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었지만 이제 모든 역경을 딛고 최근에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가 되셨습니다. 전신 화상을 입고 수십번의 수술을 통해 모든 역경을 거쳐야 했던 이지선 교수님에게는 늘 곁에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다음과 같이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나눕니다.

 

“엄마, 나랑 엄마랑 바꿀 수 있다고 하면…… 만약에 말이야…… 그럼 엄마는 바꿀 수 있어?”

“그럼, 주지 전신마취만 하면 되는데……”

 

엄마는 이식할 피부를 달라는 소린 줄 알고 대답한 것입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완전히 바꾸는 거 말이야…… 엄마 인생이랑 내 인생이라.”

 

“그럼 지선아, 천 번 만 번 바꾸지. 할 수만 있는 거라면, 엄마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바꿀수 있어.”

 

이 교수님은 고백합니다.

“더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이 나서,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돌아누워 엄마의 사랑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랑 때문에 이렇게 숨 쉬고 삽니다.

 

전신화상을 입은 이지선 학생을 교수까지 되게 한 것은 어머니의 노래가 아니었을까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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