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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교회” 사도행전 11: 19-30, 13:1-3 (06/18/2023)

모든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첫 문장이라고 합니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킬리만자로는 19,710피트 높이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의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의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신의 집을 뜻하는 ‘은가예 은가이’라 불린다. 서쪽 정상 부근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 한 구가 있다. 표범이 그 고도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이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정상적인 표범은 이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표범은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다가 먹잇감이 보이면 날쌔가 달려가 잡아야 하니 늘 풀과 나무 덤불 사이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범은 먹잇감을 찾을수 없는 킬리만자로의 산봉우리에 까지 올라 갔고 거기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두번 말씀드렸지만 모든 글들은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던 글로 쓰여지면 그 때는 독자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재욱 목사님은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표범은 산 정상을 향해 오른 것이 아니라 별을 보고 올랐다고 말합니다. 별을 보고 오를수 있는 마지막이 산 정상이었던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새로운 각도에서 표범의 모습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목사님의 해석을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난주부터 저희 교회 첫희년 비전선언문을 차례로 소개하며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첫 항목을 나눴습니다.

‘삼 세대가 함께 배우는 교회’

 

오늘은 두번째 항목을 나눕니다.

‘세계를 향한 교회’

 

제가 1995년도에 본 교회를 섬기기 시작하였는데 4년후 총회출판국에 계신 목사님이 저를 교단 성경교재집필자로 불렀습니다. 저에게 주신 첫 과제가 사도행전을 집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11장과 13장을 연구하면서 갑자기 제 머리에 천둥이 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이민 교회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이민 교회에서 사울과 바나바를 세계선교사로 파송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민 교회이고 이 이민교회에서 세계 최초로 세계 선교사를 파송하였구나….’

그리고는 평생 이민교회를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한편 그 다음해 곧 서기 2000년 저희 교회 표어를 ‘세계를 향한 교회’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1월에 다섯 차례에 걸쳐서 ‘세계를 향한 교회’라는 주제로 설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편 첫희년 비젼 선언문은 2004년에 작성하였으니 그 설교 말씀을 드린지 4년후에 저희 교회 비젼선언문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 설교를 한지 23년이 지났습니다.

 

이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이 항목에 대해서 오늘 다 말씀드릴수는 없습니다. 꼭 다시 나누고 싶은 몇 가지만 나누겠습니다. 19, 20절,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자세하게 설명해 드릴수는 없습니다. 한 마디로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는데 이 때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러나라로 흩어졌습니다. 원하지 않게 이민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 이민자들로 인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이민자들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을 전도를 열심히 해서 믿게 하였습니다. 믿는 자가 많아졌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가 부흥하였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냅니다. 24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속된 표현을 쓰자면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가 부흥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보낸 것은 신의 한수였습니다.

제가 이민신학에 대해 늘 많은 관심을 갖고 목회해 오고 있었는데 이민자의 삶의 특징은 두 가지라고 봅니다.

“좁다”, “다르다.”

이민자들이 사는 곳은 좁을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생활할수 있는 여러 여건이 맞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업도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한편 여러 지역에서 왔으니 모든 사람들이 다를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삶에는 늘 이런 속삭임이 흐를수 밖에 없습니다.

“좁다”, “다르다.”

한편 예루살렘 교회는 ‘좁고 다름’안에서 살고 있는 안디옥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바로 바나바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 그 이유는 사도행전에 잘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4장에는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족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곧 이민 2세입니다. 그리고 바나바의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좁고 다름 가운데 치여 사는 안디옥 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목회자는 바나바처럼 이민자의 삶을 알고 위로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실은 바나바는 밭이 있었는데 이를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전 재산을 다 내 놓은 사람입니다. 물질에 대해서 해방된 자이기에 좁은 곳에 사는 자들에게 이삭의 노래 ‘르호봇’ 곧 ‘넓다’를 부르면서 또한 그 노래를 가르치면서 서로의 다름도 용납하자고 권위했을줄 압니다.

 

이 바나바를 예루살렘 사도들이 안디옥 교회로 보내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권위의 목회에 한계를 바나바가 느낀 것 같습니다. 바나바는 혼자서 이 많은 무리를 가르칠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목회를 하게 됩니다. 사울은 말씀에 정통한 신학자였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확실한 콤비였습니다. 그 결과가 26절,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의 위로의 목회 권위의 목회가 먼저였고 이어서 바울의 말씀의 목회가 뒤따랐을 때 놀라운 일이 이어집니다.

한편 바나바와 사울의 지도를 받은 안디옥 교인들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되어 갑니다. 27절 이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에 기근이 든 것을 알고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냅니다.

 

안디옥 교회의 구제사역 이야기는 곧 한국의 최초의 교회 소래교회를 생각나게 합니다. 언젠가 소개해 드린줄 압니다. 한국의 최초 조직교회 곧 당회가 있는 조직교회는 새문안교회입니다. 그러나 당회는 없었지만 최초로 세워진 교회는 황해도 소래교회입니다. 소래교인들은 자기들 힘으로 교회 건축도 마쳤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선교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고 이미 선교 헌금도 적립하고 있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 편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교 헌금도 적립하고 있는데, 인도에 기근이 들었을 때와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만행 사건 때에는 자발적으로 연보를 모아 보냈다. 인도 기근을 위한 연보만 해도 80엔이 넘었다. 이들의 수입과 하루 10센트도 안 되는 임금을 고려해 볼 때, 이 자발적인 연보를 위해서 그들은 적지 않은 희생과 고생을 감내한 것이다.”

 

물론 소래교회는 이민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DNA는 안디옥 교회와 같았습니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가만 놔두실리가 없습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계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들은 세계를 향한 교회로서 마지막 준비를 마칠수 있었을까요? 13:1절,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는 사울과 바나바가 키웠지만 어느덧 세 명의 지도자가 생겼습니다.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입니다. 이들 다섯 명의 배경을 보면 안디옥 교회가 세계를 향한 교회로 세워질수 밖에 없었음을 쉽게 알게 됩니다.

차례로 출신 성분을 보면 바나바는 말씀드린대로 레위지파이면서 구브로에서 태어났습니다. 구브로는 요즘으로는 키프로스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니게르 곧 흑인으로 추정됩니다. 아프리카 출신인 확률이 높습니다. 루기오는 구레네 사람인데 구레네는 요즘 리비아 곧 북아프리카 출신입니다. 그리고 마나엔은 헤롯의 젖동생인데 이는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한 헤롯 안디바와 함께 궁전에서 안디바의 친구로서 자란 아마도 이스라엘계인 확률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울은 베냐민 지파로서 소아시아 다소에서 태어난 2세입니다.

 

이처럼 모두 배경이 다 다릅니다. 지도자들만 달랐겠습니까? 교인들도 천차만별이었을 것입니다. 곧 전혀 출신성분이 다른 다섯 명의 지도자가 하나 같이 성령에 충만함 가운데 각양 다른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안디옥 교회가 세계를 향한 교회가 될수 밖에 없었던 마지막 필요충분 조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이들은 늘 마음 속에 고향에 대한 생각이 가득차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각자 기도할 때 각자의 고향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카지노에 없는 세 가지 잘 아실줄 압니다. 저는 아직 보스톤에 생긴 카지노를 안 가봤는데 안 가 봐도 아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가 없습니다. 있다면 카지노는 잘 안 될 것입니다.

첫번째가 시계. 몇 시인지 몰라야지 계속 도박을 하면서 돈을 잃습니다.

두번째가 거울. 피곤하고 지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아야지 계속 돈을 날립니다.

마지막으로 창문. 세상을 보지 않아야지 도박장만이 세상인줄 알고 끝없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크레딧 카드를 긁으면서….

 

반면 안디옥 교회는 최소한 다섯 개의 창문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라는 창문을 통해서 그들은 구브로를 만났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창문을 통해서 아프리카를 만났습니다. 루기오라는 창문을 통해서 북아프리카를 만났습니다. 마나엔이라는 창문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만났습니다. 사울이라는 창문을 통해서 소아시아를 만났습니다.

 

영어가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현재 저희 교회는 1년에 네번 영어권 설교자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찌 보면 작은 창문 역할을 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제 설교는 거의 다 잊어 버리셨을줄 압니다.

그동안 오신 분들을 다시 말씀드리면 첫 번째 오신 분을 통해서는 미군이 갑자기 철수함으로 고통 중에 있는 나라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두 번째 오신 분은 아버님이 한국 분이신 현재 BU신학대학장님이 오셔서 bi-racial 잇슈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골든 콘웰 총장님이 오셔서 예배와 선교의 깊은 연관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난 4월에는 Native American을 대표해서 그들의 존재의 존귀함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이 네 분들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 주셨는데 하물며 안디옥 교회는 다섯 명의 지도자가 모두 다른 지역에서 오셔서 교회를 섬기고 있으니 안디옥 교회의 DNA는 세계를 향한 DNA였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을줄 압니다.

 

한편 이들이 갑자기 금식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DNA가 있는 이들이 기도할 때 그 응답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닐줄 압니다. 13:2, 3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결국 이민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세계 최초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그중 특히 사울의 사역은 너무도 잘 아십니다. 신약 성경 27권 중에 13권을 사도바울의 손으로 완성되게 됩니다.

 

자주 들으셨을줄 압니다. YPK.

Y는 연변에 이민교회인 명동교회에서 자란 윤동주.

P는 소아시아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한 사도바울.

K는 아틀란타 흑인 이민 교회에서 자란 마틴 루터 킹.

 

이들은 모두 세계를 향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이민 교회는 비록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세계를 향한 DNA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좀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동물원에서 새로이 독수리를 사육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나무가지에 앉아서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하루 종일…. 직원은 날지 못하는 독수리가 왔다고 생각해서 상사에게 보고했습니다. 상사가 와서 가만히 보다가 이렇게 지시합니다.

“나무를 짜르라.”

독수리가 멋진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다고 해서 독수리의 DNA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교우 여러분,

이민교회의 DNA는 세계를 향한 교회입니다. 어떤 역경에도 하늘을 나는 삼세대 교회가 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23년전 1월 세계를 향한 교회 설교씨리즈 마지막 설교 제목은 ‘정상을 향한 교회’였습니다. 설교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말씀드립니다.

 

1857-1865년 아프리카를 탐험하며 선교했던 데이빗 리빙스톤을 잘 아실 줄 압니다. 아프리카를 탐험하는 것이 무척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리빙스톤에게는 무척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아프리카를 탐험하던 중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당신을 위해 보내려 하네. 자네가 있는 그곳까지 가는 쉽고 좋은 길을 알려주게.”

이에 리빙스톤이 답장을 썼습니다. “만일 좋은 길이 있어야지만 되는 사람들이거든 보내지 말게. 내게 필요한 사람은 길이 없어도 찾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일세.”

 

리빙스톤이 헤밍웨이보다 거의 70년 앞선 사람입니다. 만일 리빙스톤이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었더라면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정신을 갖고 있는 자들만 보내주시게.”

 

삼세대 이민 교회 교인들 안에는 표범의 정신이 스며져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 앞에 있는 킬리만자로산을 오르십시다. 세계를 향한 교회가 되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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