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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하나님” 마가복음 12:18-27 (06/10/2023)

유대문학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이 많이 든 어르신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자기 방도 있고 서재도 있고 착한 아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책도 읽고 특히 손자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보람된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식사 시간에 음식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날 아들이 나무로 테이블을 새로 만들어 드렸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는 혼자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서 손자가 혼자 나무로 테이블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손자의 아버지 곧 어르신의 아들이 손자에게 무엇을 만드냐고 물었습니다. 손자가 대답하길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테이블을 만들어 드렸기에 자기도 언젠가 필요하게 될 것이니 아버지를 위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장 어르신의 테이블을 처치하고는 그 후로 삼세대가 함께 식사를 다시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님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리를 마련해 드렸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생소하시겠지만 저희 교회 첫 희년 비젼 선언문이 있습니다. 올해가 70주년인데 첫 희년 50주년에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였고 이듬해에 비젼 선언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주보 제일 뒷면 아래에 늘 게재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1년에 한 차례 씩은 비젼선언문에 대해 설교를 해야 좋다는 말씀도 합니다만, 팬데믹 전에 한 번 드렸으니 거의 5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비젼 선언문에 네 항목이 있는데 오늘부터 시작해서 4 차례에 걸쳐서 한 항목씩 나누고자 합니다.

 

첫 항목은 잘 아시는대로 ‘삼세대가 함께 배우는 교회’입니다.

 

조금 전 소개해 드린 이야기는 삼세대가 함께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손자로 인해서 삼세대가 다시 하나가 되었고 다시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사실 부모 공경이 소중함을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6: 2, 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제 조카가 경영학 교수인데 한번은 제가 세상 경제가 잘 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 공경이라고 말해 주었더니 콧방귀도 안 뀌더라구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조언을 했는데 이 친구는 구름잡고 있는 학자들의 책을 토대로 반응을 한듯 합니다. 언젠가는 제 조언이 옳았음을 깨닫게 될줄 압니다. 왜냐하면 부모 공경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최고의 비결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주님은 삼세대의 중요성을 또다른 더 깊은 차원에서 말씀하시고 계심을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쉽게 알수 있습니다. 18절,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믿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모세오경을 보면 내세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사두개인들의 라이벌인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이들이 증거로 내 세우고 있는 말씀은 모세오경중에 하나인 신명기 11:9절 말씀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지 거의 천년 가까이 지나서 약속의 땅에 들어 갑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장구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토대로 이는 영원한 삶 곧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음을 믿게 됩니다. 이들이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같은 모세오경 안에 있는 말씀을 보고 이처럼 두 파가 나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말씀에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아닌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을 받은 것입니다. 19절,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이들은 신명기 25:5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질문을 합니다. 이 계명은 맏아들이 죽으면 둘째 아들이 형수의 아내가 된다는 계명입니다. 칠 형제가 있는데 맏아들이 결혼후 죽었고 그래서 아내를 둘째가 맞이하게 되는데 이처럼 칠 형제가 다 죽으면 만일 부활이 있다고 하면 내세에서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다운 질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4, 2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사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숨은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이 당시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부활후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느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중 가장 큰 관심은 형들이 죽으면 아내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여인은 맏아들의 아내로서 부활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활후 맏아들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부활후 모습은 남녀의 모습이 아닌 천사들과 같은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주님은 부활을 안 믿는 사두개인들을 책망하면서 아울러 바리새인들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였지만 주님은 출애굽기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26절,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아마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 모두 어리둥절해졌을줄 압니다. 자기들은 이 말씀은 부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세 죽은 자의 이름을 말씀하신다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깜짝 놀라고 있는데 계속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7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주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은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당신의 이름을 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은 모두 산 자라는 것입니다.

 

요즘 매월 성경 암송 귀절을 나누고 있는데, 지난 5월 성경암송 귀절을 다시 살펴 보면, 출애굽기 3:15b,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신의 이름을 삼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당신의 영원한 이름으로 삼고 계심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아무리 조상을 존경해도 죽은 세 사람이 부활의 증언자가 됨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의 이름을 당신의 이름으로 삼으심을 통해서 이들은 산 자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산 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떨기나무에 붙은 불입니다. 떨기나무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불이 붙어 있습니다. 떨기나무와 같은 세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의 불이 붙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세 사람들이 삼 세대로 엮여질 때 위대한 산 공동체가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역사를 창조하는 산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 세 사람 곧 삼 세대를 시발로 해서 위대한 구원의 역사가 펼쳐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의 이름으로 당신의 영원한 이름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에게 말씀하심으로 시작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이름 안에 구원이 있고 이 이름 안에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음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이 세 사람 모두 세상에서는 떨기나무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삼세대에 걸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떨기나무 인생을 살았을 때 어느덧 이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된 것입니다. 그들로 인해서 영원한 부활과 영생의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삼세대의 이름을 당신의 이름으로 선포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희 교회의 첫 비젼선언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삼세대가 함께 배우는 교회.”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소통에 대가로 알려진 김창옥 교수님이 계십니다. 한 번 이 분을 소개해드렸는데 학위는 없지만 너무 소통을 잘해서 서울여대에서 기독교개론 교수로 모셨던 분입니다. 한번은 어느 방송에 나오셨습니다. 타이틀은 소통령 김창옥으로 소개되어졌습니다. 소통의 대가라서 소통령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 같습니다.

소통의 대가이지만 그래도 제일 어려운 그룹은 중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소통의 문을 트기 위해서 유머를 하면 웃는 것 대신에 옆에 있는 친구에게 “나이 먹고 고생한다” 속삭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어려웠던 것은 쌍둥이 아들들과의 소통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소통령이 당신의 아들들과 소통이 안 되었다니 아이러니합니다. 반면 누나가 되는 딸과는 소통이 잘 되었습니다. 누나 이름은 은혜입니다. 아들들이 어린이 집을 가게 되었는데 아빠하고 헤어지면서 “아빠” 하지 않고 “은혜 아빠”. 아버지가 자기들을 대하는 것과 누나를 대하는 것이 다른 것을 느낀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었는데 김창옥 교수님의 아버지가 청각 장애인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빠하고 소통이 잘 되질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아버지는 직업도 제대로 없어서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와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자기 아버지와 소통이 안 된 것이 자기 아들들과의 관계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딸과는 소통이 잘 되었는데…. 어느날 어린이 집에서 상담을 하자고 제안이 들어 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 때까지 10년간 어린이 집에 다니면서 소통에 대한 강의 했는데 말입니다. 그 때 부터 아들들을 안아 주기 시작하면서 노력을 해서 1년만에 아들들과 소통이 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삼세대 안에 분명 많은 잇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는 열쇠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삼세대 안에 부활의 신비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세대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삼세대의 하나님으로 불리움을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삼세대 안에는 언제나 해결하는 열쇠도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삼세대가 떨어지면 편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는 식어가기 마련입니다. 뜨거운 하나님의 역사는 삼세대를 통해서 다시금 일어납니다.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자기의 수제자로 삼습니다. 디모데전후서를 보면 얼마나 자기의 수제자인 디모데를 사랑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특히 디모데후서 1: 5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사실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의 유서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와 오랜 시간 사역을 한 후에 이 편지를 통해 삼세대 안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늘 체험한 디모데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디모데 가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을가요? 삼세대가 함께 하는 곳에는 불협화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산 자가 됩니다. 능력의 공동체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인 마가복음의 주석가는 오늘본문 말씀을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기 시작할 때 모든 삶의 오류에서 자유함을 얻는다.”

 

하물며 삼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높일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펼쳐질까요? 삼세대의 삶의 오류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불협화음도 승화시킵니다. 곧 부활의 능력에 압도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의 삼세대는 함께 배우는 위대한 공동체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삼세대에 대한 말씀은 몇 시간을 해도 부족할줄 압니다. 얼마전 삼세대에 임한 부활에 능력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되는 글을 접해 보았습니다.

 

St. Catherine of Siena

“용감한 자에게는 좋은 운과 나쁜 운은 왼 손 오른 손과 같다. 그는 두 손을 모두 사용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에게 좋은 운과 나쁜 운이 모두 임했습니다. 요즘 수요여성성경공부시 창세기를 나누는데 특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늘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일어남을 볼수 있습니다. 세 가정 중에 어느 한 가정도 되고 싶은 생각은 결코 들지 않을줄 압니다. 한 마디로 지지고 볶는 삶을 살아 갑니다. 그러다가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삼세대는 좋은 운 나쁜 운 모두 사용했습니다. 죽음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로서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영원히 산 자가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삼세대의 축복을 누리십시다. 삼세대에 임하는 좋은 운과 나쁜 운을 왼 손 오른 손으로 사용하십시다. 우리는 하늘을 날게 될 것입니다. 이로서 부활의 주님께 영광을 돌리십시다.

 

교우 여러분,

삼세대 교회가 되십시다. 삼세대 교회는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지지고 볶는 일이 항상 따릅니다. 그러나 좋은 일 궂은 일들로 인해 삼세대 교회는 하늘을 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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