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07.12.23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한 아기의 비밀
성경본문 : 이사야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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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미국 FBI에서 일했던 엘리옷 네스(Eliot Ness)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이 미국의 갱단들의 실상을 폭로하는 영화 씨리즈를 제작하였습니다. 오랫동안 TV에서 방영을 했다고 하는데, 그 중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다리를 못 쓰는 마피아 단원이 붙잡혔습니다. 네스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단원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런 범죄인이 되었습니까?”
단원은 대답합니다.
“나는 장애인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먹고 살겠습니까? 나는 마피아 단원이 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네스는 주머니에서 신문을 꺼냅니다. 그 신문에는 장애인인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가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습이 실려있었습니다. 사실 미국 대통령선거가 막 끝난 직후이었는데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기사가 실렸던 것입니다. 이에 네스가 말합니다.
“한 가지 길이 있었네요. 대통령에 출마할수 있었쟎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같은 장애인인데 한 사람은 마피아 단원이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갇힌 자를 석방시킬 수있는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물론 이 짧은 이야기를 가지고 두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사람들의 두 가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장애인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장애인된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절망적인 자신의 모습에 고착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피아 단원의 길을 택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 밖에 있는 그 무엇을 보았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사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모습을 기준해서 사는 삶입니다. 곧 자신의 세계 안에 매여 사는 자들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 밖에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을 믿고 그 세계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들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사십니까?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면 자신의 한계 안에서 스스로 포기하며 죽어 가고 있던 이스라엘민족이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사건이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멸시를 당했던 땅이 영화롭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스라엘 민족이 흑암 가운데 있었는데 이제 빛의 세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한 마디로 늘 패배에 익숙했던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승리가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사야의 이 예언을 들으며 아마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생각하면 할수록 신이 납니다. 이젠 두려울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강대국 사이에서 늘 종노릇만 했던 차인데 빛이 임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강대국이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모두다 큰 희망에 사로잡힙니다. 이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주어진 것입니다. 전처럼 흑암에 매여 있는 자로서 살아 가느냐 아니면 이사야의 말씀을 귀 담아 듣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느냐….
그런데 조금씩 의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How?” “어떻게 우리에게 빛이 임하고 어떻게 우리의 나라가 창성케 되…?” 이것은 당연한 의문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누가 나타나서 ‘남북한이 곧 통일 되고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될꺼야’라고 말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당연히 “어떻게…?” 이처럼 이스라엘인들도 반응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사람들의 이 마음을 어떻게 아셨던지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한 아기를 통해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을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알았습니다. 한 아기가 날텐데 그 아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고통에서 건지고 빛을 주며 아울러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의 가슴에는 다시금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다시 “How?”의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번의 질문은 “그 아기를 어떻게 알아…? 하루에도 수 많은 아기가 태어나는데 어떤 아기가 그 아기인지 어떻게 알아…?” 정말 수 많은 아기들 중에 누가 메시야인지 어떻게 알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인들은 큰 염려에 잠깁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인들의 염려를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하나님은 계속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합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그 아기는 최고의 나라 완전한 나라를 세우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전성기는 다윗과 솔로몬시절입니다. 정말로 그들은 위대한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운 국가와는 상대가 안되는 완전한 나라를 이 아기가 세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것은 이루어질 것이 보장되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의 마음은 더욱 든든해집니다. 최고의 선물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를 혼자 놓아 두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당신의 열심으로 이 놀라운 일을 감당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스라엘사람들의 질문은 해결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 아기를 구분해…?”
얼뜻 보면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 아무 해답도 주시고 계시지 않습니다. 아니 그래도 조금은 알려주셨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어디에서 태어나실 것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한 둘입니까? 왜 하나님은 “이 아기다” 꼭 집어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한 장군을 보내리라” 말씀하셨더라면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장군깜이 누구인지 구분하기가 쉬우니까. 그러며는 다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보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매한 표현을 이사야를 통하여 하게 하십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왜 하나님은 한 아기가 나을 것을 강조하셨을까요?
아마도 진실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원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이 창성한 나라가 되길 원하는 자들은 이 아기를 상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기를 상상하라”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이들은 상상했을 것입니다. “이 아기는 어떤 아기일까?” “이 아기는 어떤 아기이기에 그 이름이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일까?” 이 생각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며 아기를 상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 아기의 비밀을 남 몰래 보여주시지 않으실까요? 그러니 태어나시는 곳이 베들레헴임을 알려주심도 많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의 이 말씀을 듣고 아기예수를 상상한 분이 바로 아기예수가 할례를 받으러 성전에 왔을 때 아기예수를 알아 보았던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왜 하나님은 ‘이 아기다’ 말씀하시지 않으시는지를 알수있습니다. 아기예수를 상상하는 자들은 아기예수를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상상력으로 이 아기를 상상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력 안에서 아기를 만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근거해서 이 아기를 상상하는 자들은 언제나 바로 그 아기를 만나는 축복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놀라운 세계를 만나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자명해졌습니다. 아기예수를 상상하지 않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를 만나지 못합니다.
폴라 달씨(Paula Darcy)라는 저술가가 딸과 함께 오스트리아에 있는 스와르스키(Swarovski) 수정(crystal) 공장에 방문했습니다. 안내자는 처음에는 수정들로 가득찬 방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정교하고 화려한 수정들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명상을 하는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방에는 음악도 조용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나오는데 놀라운 것을 깨닫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나온 후 수정은 더욱 그 고귀함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수정공장안에 명상의 방, 어떻게 보면 어울리지 않죠? ‘그런 공간이 있으면 수정이라도 더 전시해 놓지’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수정 전문인들은 놀라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그들은 수정의 신비스러운 빛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수정의 신비를 볼 수있게 되는데 하물며 아기 예수의 신비는 어떻겠습니까?
저는 확신합니다. 아기 예수를 깊이 명상한 만큼 우리는 그의 신비를 느낄 것입니다. 그의 고귀한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한 장군을 소개해주시지 않고 한 아기를 소개해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기예수를 명상하게끔 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그를 명상할 때 우리는 그가 얼마나 기묘하신 분인지 그가 얼마나 모사가 많으신 분인지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바로 그 분이신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평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온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그가 온 세상을 신비스럽고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온 세상은 그의 지혜로 가득 차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은 그 분이 만든 수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온 천지는 아름다운 장식으로 화려한 옷을 덧입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철에 불과합니다. 만일 우리가 아기예수를 명상한다면 우리는 1년 사시사철 온 세상이 수정과 같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급하지 않습니까? 아기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세상을 다스리는 지혜를 얻기는 커녕 세상지혜로 세상을 다스리고 장식하려 하지 않습니까? 아기예수는 너무 어려 세상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래서 그 잘난 머리에서 나오는 세상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점령하려고 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얼마전 뉴스 윜(Newsweek) cover page에 어린이가 방독면을 쓰고 있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생화학 폭탄을 방지하는 방독면이 아니라 음식알러지를 방지하는 방독면을 쓰고 있는 사진입니다. 요즘 가면 갈수록 아이들의 음식 알러지가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 한국에서는 땅콩만 있으면 전 식구가 달려 들어 싸우면서 먹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땅콩알러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왜 갑자기 이렇게 알러지가 많이 생겼을까요? 사실 아직 정설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뉴스 윜 기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의학이 발달하면서 병균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병균과 싸우던 인체안에 있는 방어기전이 이젠 할일이 없어서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과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음식 알러지가 전보다 훨씬 많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제가 생각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세상지혜로 잘 살아 보려고 해도 그 세상지혜는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기에 하나가 좋으면 또 다른 면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새로이 보게되었습니다. 병균을 없애다 보니 어느덧 알러지가 많이 생겨 나듯이 말입니다. 그 결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이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이 기사를 읽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명상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로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명상함으로 오는 축복은 결코 하나가 좋으면 다른 면은 나빠지는 것이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신비함으로 가득채워진 나라입니다. 신비스러운 빛이 가득 넘치고 창성한 축복이 넘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평강의 축복이 가득찬 나라입니다. 우리가 그 아기를 명상한다면 우리는 그 놀라운 세계 안에서 사는 자들이 될것입니다. 아기예수의 세계를 보게 합니다. 온 세상은 아기예수의 손이 안닿은 곳이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온 세상은 아기 예수의 수정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온 세상은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본 것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아름다운 수정을 많이 보았으니 아름답게 살게 됩니다. 평화의 세계를 맛보았으니 평화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모든 것의 시작은 아기 예수입니다.
만일 처음 말씀드린 마피아 단원이 휠체어를 타고 아기예수를 깊이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루즈벨트를 잇는 제2의 휠체어를 탄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까요?
교우 여러분, 그동안 우리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장식용 아기예수를 보아왔습니다. 그것이 아기예수를 맞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들의 자녀들을 도리어 고통으로 몰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상상력을 가지고 아기예수를 조용히 상상하십시다. 우리도 수정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실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장 메리 루스티거(Jean-Marie Lustiger) 라는 분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약속을 이루신다.
그런데 그는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만 안겨진다.
기다림이 없이는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안겨지지 않는다.
아니 기다림이 없이 아기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받아들여 질 때 그는 모든 기대를 초월한다.”
교우 여러분, 기다림이 없이는 아기 예수는 결코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곳에는 크리스마스 캐롤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어난 아기예수는 세상을 놀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수정과 같은 세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아기예수를 기다리십시다. 아기 예수를 상상하십시다.
이사야는 말씀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